둘 중 한명은 범인…'이태원 살인사건' 당사자 18년만에 법정 대면

입력 2015-11-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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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은 피고인에게 '아리랑치기 범행이 이곳에서 벌어지면 웃기겠지'라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까." (검사)

"저는 그렇게 이야기한 것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에드워드 리)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에드워드 건 리(Edward Kun Lee·36·미국국적)가 진범으로 지목된 아더 존 패터슨(Arthur John Patterson·36·미국국적)와 18년 만에 법정에서 재회했다. 이 사건은 사망 현장에 있던 둘 중 한 명이 살인범이 확실한데도 아직까지 실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리와 패터슨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서로를 범인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 부장판사)는 4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패터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검찰은 이날 리를 상대로 패터슨의 범행동기에 관련된 진술을 얻기 위해 질문을 던졌지만, 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유의미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검찰은 범행 당시 리가 패터슨에게 '아리랑 치기'를 해보라고 부추긴 게 살인의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아리랑치기는 취객을 상대로 저지르는 감도 범행을 뜻하는 은어다. 검찰에 따르면 리는 패터슨에게 "아리랑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 순간에 겁이나서 하지 못했다. 아무나 찔러봐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패터슨 측은 일면식이 없는 피해자를 죽일 동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변호인은 칼로 찌른 것은 패터슨이 아니라 리고, 범행을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리는 부담을 느낀 듯 피고인이 드나드는 통로를 이용해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을 피해 법정에 들어섰다.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방청객들을 의식한 듯 리와 패터슨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피해자 조중필 씨의 어머니도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는 "방청석에 앉아 지켜본 바로는 18년 전 재판과 똑같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법정에 세웠는데 우리 죽은 아들 한이라도 풀게 진실을 꼭 밝혀달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자 가족의 의견은 유무죄 판단에는 영향이 없지만, 양형 요소로 반영이 될 수 있다.

주한 미군 군속의 아들인 패터슨은 한국에 머무르던 1997년 4월 22살이던 대학생 조 씨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조씨는 당시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패터슨은 그러나 1999년 검찰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출국했고, 범행 현장에 같이 있던 리는 1999년 2년의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범인없는 살인사건'으로 비난여론이 일자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2011년 11월 패터슨이 진범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패터슨의 신병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국 법원이 2012년 10월 우리 법무부의 송환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패터슨은 우리 법정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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