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스크램블 톡] ‘마이크로 매니저’ 마르틴 빈터코른은 눈 뜬 장님이었나

입력 2015-11-05 16:36 수정 2015-11-1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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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빈터코른 폭스바겐 전 CEO. 블룸버그
▲마르틴 빈터코른 폭스바겐 전 CEO. 블룸버그

“진짜 몰랐습니까?”

마르틴 빈터코른 전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에게 묻고 싶습니다.

독일 국민차 폭스바겐의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겉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10년 가까이 폭스바겐을 이끌었던 그가 ‘눈 뜬 장님’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9월18일 사태가 불거지자 그로부터 며칠 뒤 빈터코른은 회사 경영진의 압박에 못 이겨 사임했습니다. 그는 “극히 일부에 의한 중대 과실”이라며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2018년까지 임기가 2년 더 연장된 상황이었습니다. 회사 이사회 역시 그의 임기 연장을 만장일치로 결정했고요. 여기에는 암묵적인 계약이 있었을 겁니다. 그는 몇 년 전 시장과 약속을 했습니다. 2018년까지 글로벌 판매를 1000만대로 늘리고 세계 1위를 수성하겠다고. 놀라운 건 폭스바겐이 실제로 지난해에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를 제치고 글로벌 판매 1위를 달성하면서 그 약속을 무려 4년이나 앞당겼다는 겁니다.

여기서 눈 여겨 볼 건 폭스바겐의 성장 속도입니다. 자동차 업계가 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2007년에도 폭스바겐의 글로벌 판매 대수는 620만대에 불과했습니다. 1년 후인 2008년에는 630만대로 10만대 늘어나는데 그쳤고요. 2009년에도 성장은 제자리 걸음을 했습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겁니다.

그러던 것이 2010년부터 상황이 확 반전됩니다. 2010년 폭스바겐의 글로벌 판매는 720만대로 증가량이 90만대가 훌쩍 넘습니다. 또한 이 때부터 연간 판매량이 100만대 단위로 뜁니다. 2011년 글로벌 판매 대수는 830만대, 2012년에는 930만대. 2013년에는 그 폭이 다소 주춤해져 970만대로 40만대 늘어나는데 그칩니다. 그래도 세계 판매 1위입니다.

석연치 않은 건 이번 폭스바겐 조작 스캔들에 해당되는 모델들이 2009년식부터라는 겁니다. 폭스바겐의 글로벌 판매량이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립니다.

당시 상황을 몇 가지 정리하자면, ▲폭스바겐은 세계 판매 1위를 달성해야 했다. ▲폭스바겐은 2017년부터 시행되는 유럽연합(EU)의 배출가스 허용 기준(유로6)을 충족해야 했다. ▲그러려면 거액의 연구개발비가 들어가는 한편, ▲이미 생산된 차량의 재고 처리가 문제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90년대부터 배출가스 규제를 엄격하게 시행해왔습니다. 특히 유럽은 2004년부터 ‘유로3’ ‘유로4’ ‘유로5’ 등 승용차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를 단계적으로 높여왔습니다.

2017년 9월부터 시행되는 유로6의 기준은 실도로 조건 질소산화물(NOx) 배출가스 농도가 배출허용 기준의 2.1배, 2020년 1월부터는 1.5배를 만족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시행된 현행 허용기준은 0.08g/㎞이므로 새 기준은 2017년 9월부터 0.168g/㎞, 2020년부터 0.12g/㎞가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업체가 허다합니다. 유럽 관련 기관이 10개 제조사의 32개 모델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 22개 모델이 기준치를 초과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지요. 심지어 배출가스 저감장치로 눈속임한 폭스바겐조차 인증시험 기준은 통과했지만 실도로 주행에선 불합격했습니다. 세계 판매 1위를 노리고 폭풍질주해온 폭스바겐 입장에선 이 문제로 발목이 잡히고 싶지는 않았겠지요.

빈터코른의 별명은 ‘마이크로 매니저’. 평소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입니다. 이를 제대로 보여주는 유명한 영상이 있습니다. 201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국제자동차전시회(IAA)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영상 속에는 더블 수트를 입은 빈터코른이 부하 직원들을 대동하고 현대자동차 부스를 찾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손전등까지 비쳐가며 현대차의 내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운전석에 앉아 핸들 높이를 조절하는 레버를 조작하면서 갑자기 “비숍!”이라고 소리칩니다. 이 때 그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레버를 조작해도 전혀 동요가 없네. 현대차는 가능한데 왜 우리는 안된단 말인가!”라고 호통을 치지요. 그는 차 트렁크가 닫힐 때의 소리까지 신경 쓸 만큼 디테일에 집착합니다.

이런 그가 자사 제품이 법률을 위반하는 소프트웨어까지 탑재했단 사실을 몰랐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까요? 더구나 골수 엔지니어이자 60만명의 밥줄을 좌지우지하는 그가 배출가스 조작 비리를 몰랐다면 더 큰 문제이겠지요.

미국의 엄격한 규제를 통과하는 배기 가스 시스템을 개선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독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부 엔지니어가 이 얘기를 꺼냈다가 꾸지람을 듣기 싫어서 배출가스를 조작해 테스트를 통과하는 길을 택했을 거라는 추측도 나옵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9월26일자 기사에서 “독일 대기업 임원은 자신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어떤 수단도 정당화한다. 폭스바겐의 경우에는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시장의 넘버 원이 되는 게 최대의 목표였다”고 전했습니다. 도요타를 추월하겠다는 일념 하에 분별력을 잃고 부정한 방법을 썼거나 혹은 보고도 못 본 척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빈터코른은 세상을 다 가진 남자에서 하루 아침에 루저로 전락했습니다. 그를 추대했던 이사회는 언론의 눈을 피해 그를 밀실로 불러들여 장장 1시간 30분 가량의 회유 끝에 사직서를 받아냈습니다. 눈뜬 장님에 대한 사측의 최후통첩은 잔인했지요. “미안하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당신은 10분도 못 견딜 겁니다.”

빈터코른의 사퇴가 의외로 빨랐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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