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수능생의 마음 달래준 곱창볶음

입력 2015-11-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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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장의 이모 부장은 발(足) 요리를 못 먹는다. 일단 생김이 흉악망측한 데다 발 고린내도 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가. 이 부장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이자 편집국 직속 상사인 박모 국장은 발 요리 마니아다. 박 국장은 퇴근 무렵이면 콜라겐의 효능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한 후 여기자들에게 돼지족발과 닭발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정말 이상한 것은, 나 같으면 그 자리에 가지 않을 텐데 이 부장은 늘 함께했다. 그리고 닭의 발목(때론 돼지 발가락)을 잡고 맛있게 살을 발라먹는 이들을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라보며 연신 소주잔을 들이켰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부장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발 말고, 내장으로 먹읍시다!” 곱창은 그렇게 회식 메뉴로 첫 등장한 이후 쫄깃하고 고소한 맛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물론 박 국장도 발을 버리고 내장을 택했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 입맛과 함께 의욕이 떨어지면 곱창이 생각난다. 추억과 낭만을 품고 있는 곱창은 원기 회복에도 좋은 보양식이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곱창은 정력과 기운을 돋워주고 오장을 보호하며, 살코기에 비해 철분과 비타민이 풍부하다. 게다가 불포화지방산과 콜라겐 성분이 풍부하고 알코올 분해 작용도 탁월하다니 술꾼들에게는 최고의 안주가 아닌가 싶다.

곱창은 ‘곱+창’의 형태로 소나 돼지의 작은창자를 일컫는다. 곱은 예전에는 ‘기름(膏·곱 고)’을 뜻했다. 곱창을 구우면 고소한 냄새가 나며 지글거리는데, 기름기가 많기 때문이다. 곱은 또 ‘지방(脂肪) 또는 그것이 엉겨 굳어진 것’, ‘부스럼이나 헌 데에 끼는 고름 모양의 물질’을 의미한다. 곱의 뜻을 생각한다면 눈곱/눈꼽, 배곱/배꼽 등 그동안 헷갈렸던 단어들의 바른 표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먼저 피곤하거나 감기, 눈병에 걸렸을 때 눈에서 나오는 진득진득한 액은 ‘눈에 낀 곱’이므로 눈꼽이 아니라 눈곱이라고 써야 한다. 그렇다면 배꼽과 배곱은 어느 것이 바른말일까? 배꼽은 탯줄이 떨어지면서 배의 한가운데에 생긴 자리다. 건강한 사람의 배꼽에서는 진득진득한 액이 나오지 않는다. 기름기, 부스럼 등에 생기는 이물질도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배꼽은 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로, 소리 나는 대로 배꼽이 바른 표기다.

기왕 우리 몸을 살펴본 김에 몇 개 더 짚고 넘어 가자. 두 눈썹 사이에 잡히는 주름은 눈살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눈쌀이라고 잘못 알고 쓴다. 뭔가 못마땅해 미간을 찡그리면 그 사이에 ‘살’이 모이지 ‘쌀’이 모일 리는 없지 않은가. 반면에 “그녀는 그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큰딸 희심이도 그의 등쌀에 못 이겨 죽은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한승원, 해일)에 나오는 등쌀은 몹시 귀찮게 구는 짓이란 의미로 등에 있는 살과 전혀 관련이 없으므로 등쌀이 바른 표기다. 물론 등에 있는 근육이나 살을 의미할 때는 ‘등살’이라고 써야 한다. “과거 미스코리아들은 가슴의 볼륨감을 살리기 위해 등살까지 끌어모았다”라는 한 미용실 원장의 말 속 등살이 바로 그 의미다.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어제 저녁 수험생인 딸아이와 딸아이 친구들을 응원하기 위해 독서실을 찾았다. 피자, 치킨, 초밥 뷔페 등을 제안했더니 아이들은 매운 음식이 스트레스를 날리는 데 최고라며 곱창볶음을 먹고 싶단다. 매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했다. 특히 어머니 등쌀에 못 이겨 상향 지원했다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용기를 북돋워 줬다. 지금 이 땅의 모든 수험생과 부모의 바람은 하나다. 바로 문제를 잘 풀고 잘 찍어 ‘재수(再修) 없는 자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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