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저수지의 감기

입력 2015-11-12 11:21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배재형 시인, 민앤지 커뮤니케이션실장

입질 좋다는 저수지 한쪽

먹장구름 고단한 바람을 끌고 간다

아니, 바람이 먹장구름 밀고 간다고나 할까

발걸음 지치면 숨어 있던 돌부리 더 커져 입질이 시작된다

하얗게 부풀어 오른 기포가 하나둘 가라앉으며,

따라 운동화 한짝이 가라앉고 소주병이 가라앉고

오르가즘이 가라앉고 사직서가 가라앉고 통장이 가라앉는다

막상 중요한 나의 미끼는

번번이 음습한 빛의 침전 속에 결빙되기 일쑤다

과연 남은 하루를 온전히 안심할 수 있을까

바람은 물결도 끌고 간다

다른 물결이 명퇴 당한 그 자리를 메운다

물결들은 송사리 떼처럼 차가운 허방을 헤매고 있다

작은 어항의 기억은 투명한 유리 울타리를 벗어나야 하리라

저수지 주변에는 빛 바랜 사진 누런 테두리처럼

제 몸을 제 관으로 맞춰 놓은 고목들이 구겨져 있다

먹장구름 어깨에서 더 무거운 짐을 풀면

잠복기가 긴 감기처럼 콜록 콜록

숨어 있던 입질이 다시 시작된다

감기 바이러스 걸린 그물이 천천히 물가에 던져지고

그물에서 비 맞은 비늘이 반짝거린다

고단하게 벌렁거리는 아가미 사이에서,

애써 웃는 가장의 눈 속에서

뜨거운 빗물이 흘러내린다

아직 감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구나

파란 핏줄들이 걸어갈 길만큼

저수지 물가에 고여 가만가만 만성의 피로와 숙취와

가시지 않는 열을 조용히 방생하자

이내, 감기 바이러스는 비밀스런 물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 시집 '소통의 계보' 중에서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이투데이, 2026년 새해맞이 ‘다음채널·지면 구독’ 특별 이벤트
  •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 사직서 제출…향후 거취는?
  • 10만원이던 부산호텔 숙박료, BTS 공연직전 최대 75만원으로 올랐다
  • 트럼프 관세 90%, 결국 미국 기업ㆍ소비자가 떠안았다
  • 법원, '부산 돌려차기' 부실수사 인정…"국가 1500만원 배상하라"
  • 포켓몬, 아직도 '피카츄'만 아세요? [솔드아웃]
  • 李대통령, 스노보드金 최가온·쇼트트랙銅 임종언에 “진심 축하”
  • 금융위 “다주택자 대출 연장 실태 파악”⋯전금융권 점검회의
  • 오늘의 상승종목

  • 02.1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02,800,000
    • +2.1%
    • 이더리움
    • 3,070,000
    • +2.64%
    • 비트코인 캐시
    • 832,000
    • +2.97%
    • 리플
    • 2,198
    • +6.65%
    • 솔라나
    • 129,200
    • +4.19%
    • 에이다
    • 438
    • +9.77%
    • 트론
    • 416
    • +0.73%
    • 스텔라루멘
    • 256
    • +6.22%
    • 비트코인에스브이
    • 25,960
    • +4.59%
    • 체인링크
    • 13,420
    • +4.52%
    • 샌드박스
    • 136
    • +4.6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