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견 관치로 비롯될 폐해를 사전에 차단함은 물론 산업계의 의견을 존중한 방안으로 비친다. 그러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어 책상물림 정책이라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거세다.
15일 금융위원회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관계 부처 차관과 부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철강·석유화학·건설·해운 등 4개 업종의 국내외 시장 여건과 업황 전망, 산업 내 부문·품목별 경쟁력 현황을 평가하고 해당 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산업 별로 다양한 방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철강업은 합금철 분야에서 시장 자율적으로 추진 중인 설비 감축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석유화학은 일부 취약 제품군에 대해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품목은 업계의 설비 감축을 독려하기로 했다.
건설은 상시 구조조정과 함께 정상기업의 부실화를 막기로 했다. 해운업은 자율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되 원양선사는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조선업은 이미 채권단에 의해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고 ‘저가수주 방지 정보센터’도 설립될 예정이어서 안건에서 제외됐다.
정부가 발표한 방안을 바라보는 산업계의 시각은 어떨까. 산업계 한 관계자는 “업종 별 구분 없이 모두 원론적인 수준에서의 이야기일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구조조정을 재촉받는 석유화학 업계의 반응은 “정부가 제시한 설비 감축 등의 방안은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로 요약된다. 정부가 강조한 ‘PTA 설비 감축’이 더욱 그러하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PTA 감축 독려가 생산업체마다 상황이 다르다는 점은 반영하지 않은 사실상 강요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롯데케미칼과 효성 등은 자체 생산한 PTA 전량을 PET(페트)나 합성섬유, 타이어코드 등을 만드는 원료로 자체 소비한다.
또 PTA 생산 규모 1~2위인 한화종합화학과 삼남석유화학 등이 설비를 줄이면 고정비(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인력은 줄일 수밖에 없다. 불가피하게도 인력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안대로라면 관련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따른 비난을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글로벌 경기불황과 공급과잉 등으로 제품 가격이 내려가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나중에 호황기가 찾아오면 석유화학 업체들은 다시금 설비를 늘리네, 필요 인력을 뽑네 하면서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석유화학 역시 오르고 내리는 경기 흐름이란 것이 있는데, 현재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설비를 줄여 그에 따른 후유증을 감내하라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처사”라며 “구조조정은 업계에 맡기고, 실질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은 무엇인지를 정부가 고민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곱씹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