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엘리엇 분쟁이 남긴 것] 낮은 지분으로 M&A 주도 ‘벌처펀드의 역습’ 위험성 경고

입력 2015-11-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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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년 기준 최대주주 지분율 14%, 합병 당시 주가 저평가 공격의 표적… 주총 표 대결서 이겼지만 소액주주 권익보호는 숙제로

지난 7월 이슈가 됐던 외국계 벌쳐펀드 엘리엇이 삼성 경영권을 공격한 사례는 우리 사회에 많은 점을 시사했다. 이 사례가 주목을 끌었던 이유는 삼성처럼 거대한 기업의 주주권보호와 경영권 방어 문제는 단순히 개별기업의 지배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엘리엇 간 분쟁은 외국계 펀드를 상대로 경영권을 어떻게 지켜낼지도 관심사였지만, 그동안 소외됐던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환기시키는 계기도 됐다. 앞으로 같은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법 제도는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동시에 주주의 권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한국상사법학회(회장 신현윤 교수)의 ‘주주권 보호와 경영권 방어의 조화를 위한 회사법리의 재구성’ 세미나에는 학계와 실무 전문가들이 모여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엘리엇은 왜 하필 많은 국내 상장사 중 삼성물산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을까.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삼성물산은 내부지분율이 낮아 경영권 공격이 용이하다”고 분석했다.

한국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2013년 9월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중 최대주주 지배 지분율이 33∼50%인 회사는 50개로, 전체(144개)의 34.7%를 차지했다. 50% 이상인 회사도 38개사(264%)에 달했다.

반면 최대주주 지배지분율이 20% 미만인 상장회사는 20개사(13.9%)에 불과했다. 삼성물산의 경우 2012년 말 기준 최대주주 지배지분율은 보통주 지분율 14.24%, 총합지분율이 13.83%로, 다른 대규모 상장사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 주가가 매우 저평가돼 있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적대적 M&A를 시도할 수 있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하려는 시도는 무산됐다. 우리나라 상법은 회사 지배주주가 낮은 지분으로도 M&A를 주도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합병은 주주총회 결정으로 충분하다. 지배주주가 다른 주주들과 이해가 상반되는 상황에서도 M&A를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대신 다른 주주들은 언제든지 소송을 통해 합병의 효력을 다퉈 무효로 만들 수도 있다.

현행 제도 개선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양 교수 등 주주의 권익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제도 개선을 통해 지배주주에 ‘충실의무’를 부과해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배주주의 충실의무(Treupflicht, Fiduciary Duty)란 지배주주가 그의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회사와 다른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의무이다. 독일과 미국에서 모두 판례로 인정되고 있다.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와 타 주주의 이익을 조화시키지 않으면 삼성물산처럼 지분비율이 낮은 상장사는 비슷한 상황을 언제든 다시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귀기울일 만한 지적이다.

양 교수는 구체적으로 삼성·엘리엇 사례에서 문제가 된 합병비율 산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가치에 의한 합병비율 산정 방법이 합병 시기를 자의적으로 조정할 경우 공정하지 않은 주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순자산 가치 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배주주가 자기주식을 처분하는 것도 일정 부분 규제를 통해 경영권 분쟁 해결 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실무계에서는 정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양 교수의 주장에 대해 “자기주식 취득과 처분을 자본거래로 보게 된다면 경영권 방어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또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야말로 가장 객관적인 합병비율 산정 기준이며, 합병비율 산정 방법을 법으로 정하는 나라는 없다”고도 주장했다.

정 전무는 오히려 “현행 M&A 관련 제도는 IMF 이후 적대적 공격수단에 대한 규제는 대폭 완화된 반면, 이에 상응하는 방어수단이 없어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며 “‘차등의결권 제도’나 ‘포이즌 필(poison pill)’제도 등 새로운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전무는 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이에 대한 남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매번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는 게 무산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제도 균형을 맞추도록 설계하고, 그 다음에 남용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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