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관령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눈에 대해서는 아주 각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내 기억 속의 첫눈들의 모습은 대개 이렇다. 아직 산에 있는 나무들에 단풍이 매달려 있고, 어떤 때는 푸른 잎사귀가 그대로인 나무도 많은데, 어느 날 갑자기 내린 눈으로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참 이상한 것이 곧 눈이 오고 겨울이 오는 걸 나무들도 알 텐데 어떤 나무들은 그걸 알면서도 늦가을에 햇빛이 조금만 비쳐도 새싹을 내밀려고 애쓰고, 풀도 제철이 아닌데도 꽃을 피우려고 애쓴다. 그 위에 야속하게 첫눈이 내리고, 그 첫눈 위에 무시무시한 대관령의 폭설이 겨우내 내리고 쌓인다.
눈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을 읽었다. 그때 읽은 책으로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첫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은 이렇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그리고는 그 ‘국경’이라는 말 옆에 괄호를 열고 사실은 국경이 아니라 현과 현 사이의 접경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도와 도의 경계쯤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중에 그 책을 읽은 사람마다 그 첫 문장이 무척 놀라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그것을 읽으면서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두 문장을 ‘마치 우리 동네 같은 마을인가 보군’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이 놀라운 문장 역시 소설 문장으로보다는 어린 날부터 늘 봐온 눈 내린 날의 밤풍경으로 그것을 이해했다.
더구나 대관령의 아흔아홉 굽이 대신 산허리를 뚫은 터널이 생기고부터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고 하는 이 느낌을 그대로 전달받을 때가 많다.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 날씨가 따뜻한 강릉보다는 대관령 꼭대기 윗동네인 평창이 눈도 일찍 내리고 겨울도 빠르다. 어느 흐린 날 강릉에 왔다가 저녁 늦게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면 강릉은 눈이 내리지 않았는데, 몇 개의 터널을 빠져나가 만나는 대관령 서쪽 너머 동네는 그야말로 밤의 밑바닥이 하얘져 있을 때가 있다.
스무 살 가까이 되었을 때 본 ‘러브 스토리’라는 영화도 지금은 전체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눈 위에 뒤로 벌렁 누워 눈사진을 찍던 모습만은 마치 어제 본 영화처럼 떠오른다. 어릴 때 우리들이야말로 그런 눈사진을 참으로 많이 찍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혼자 그러기도 하고 또 형제들과 손을 잡고 함께 눈 위에 뒤로 벌렁 눕기도 했다. 그리고는 그게 누구의 눈 사진인지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했다. 이렇게 겨울 고향에 대한 제 추억은 언제나 그렇게 눈과 함께 한다.
지금도 내 고향마을은 겨울마다 많은 눈이 내린다. 이번 겨울에도 틀림없이 많은 눈이 내릴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고향에 가면, 아니 고향을 생각하기만 해도 늘 넉넉한 마음부터 먼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