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이 3개월 새 5조원이 넘는 대기업 여신을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중 대기업 여신 규모가 가장 큰 KEB하나은행의 이 같은 움직임을 시작으로 시중은행들의 부문별 여신 조정, 이른바 포트폴리오 재편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는 정부의 연이은 기업 구조조정 강화책과 맞물려 우량 기업에도 상당한 자금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4일 이투데이가 4대 은행의 부문별 여신 변화를 분석한 결과 KEB하나은행의 대기업 여신 규모는 9월 말 기준으로 44조284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 분기(49조5112억원)보다 무려 5조2270억원이 줄어든 규모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이후 지나치게 높게 나타난 대기업 여신 규모를 줄이는 차원”이라며 “대기업 여신 규모를 다른 은행과 비슷하게 전체 여신의 20% 이하 수준으로 낮추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적절한 대출채권 포트폴리오 구성과 위험 관리 차원에서 대기업 여신 비중을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통합 전 하나은행은 소매금융에서 경쟁력이 높았고, 외환은행은 기업대출 분야와 특히 대기업 여신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두 은행이 합치면서 대기업 여신 규모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부실 여신으로 인한 은행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방안이다.
최근 KEB하나은행이 가계 여신과 중소기업 여신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체 규모를 키워 대기업 여신 비율을 적정하게 낮추려는 의도다.
KEB하나은행은 여신 축소 작업을 내년 상반기까지 약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은행의 대기업 여신 축소가 기업의 자금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 내달 300곳에 달하는 대기업 신용등급이 재조정될 예정이어서 자금 압박은 더 커질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별 은행의 포트폴리오 조정을 막을 순 없지만 단기에 대기업 여신이 급격하게 줄면 우량기업도 자금 압박을 받는 등 시장에서 유동성 경색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KEB하나은행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