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항상 물과 같아서 잡고 있으려면 다 빠져나갑니다. 흐르기 전에 그 돈을 다 써야한다는 것이 내 지론(持論)입니다. 3년 간 회사가 어려울 때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투자를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죠.”
지난 23일 경기도 판교 크루셜텍 본사에서 만난 안건준 대표는 자신의 지론을 이 같이 강조했다. 이는 상황이 좋지 않았던 지난 3년간 회사의 미래 먹거리 창출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던 안 대표의 ‘뚝심’이기도 하다. 많은 유보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진행하지 않는 일부 대기업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크루셜텍은 모바일 지문인식 솔루션 전문기업이다. 모바일 광마우스인 ‘옵티컬 트랙패드(Optical TrackPadㆍOTP)’와 지문인식 솔루션인 ‘바이오메트릭 트랙패드(Biometric TrackPadㆍBTP)’ 등을 전 세계 휴대폰 업체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2001년 창업해 중견기업으로 도약한 업체로, 지난해 연결기준 415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1년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월드클래스300’ 기업으로도 선정되는 등 국내외로도 인정받고 있다.
크루셜텍은 과거 주력제품이었던 OTP를 림(RIM)의 블랙베리에 독점 공급하며 세계 시장을 석권해 나갔다. 하지만 림이 스마트폰 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휘청이자, 크루셜텍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크루셜텍에게 있어 림의 비중은 60%에 됐던 만큼, 이후 3년간 연간 적자를 이어가는 등 여파가 상당했다.
안 대표는 “당시 회사가 어느 한 매출처에 크게 묶여있지 않더라도, 다양한 변수로 회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면서 “이 경험을 살려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수 바이어에 다수 아이템을 만들어보자는 것으로, 과거 어려운 시기에 터특했던 생각이자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후 안 대표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3년간 1000억원을 모두 투자에 쏟아부었다. 올해 크루셜텍 회생의 일등공신인 BTP가 그 노력의 산물이다. 안 대표는 1000억원을 갖고 연구개발(R&D) 강화, 공장 설비 확충, R&D센터 설립 등으로 회사의 미래를 만들어갔다. 이를 통해 BTP는 크루셜텍의 메인 사업으로 도약하며, 회사의 실적도 이끌어가고 있다. 실제 크루셜텍의 BTP 사업은 2013년 110억원 매출에서 2014년 288억원, 올해 3분기 1191억원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크루셜텍은 현재 삼성과 애플을 제외한 국내외 14개 스마트폰 제조사에 BTP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누적 3000만대를 공급했고, 연말까지는 4000대 이상 판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베트남 법인 설비투자를 완료했고, 중국 심천에 법인을 설립하며 고객사 대응력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엔 알고리즘 ‘뮤온’도 개발하며 소프트웨어(SW) 경쟁력도 확충 중이다.
안 대표는 “앞으로는 BTP의 형태를 점차 새로운 형태로 복합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나갈 계획”이라며 “스마트폰 글라스 밑에 BTP를 탑재하는 ‘커버 글라스 일체형’은 물론, ‘디스플레이 일체형’, ‘글라스 홈키’ 제품 등 다양하게 개발ㆍ상용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크루셜텍의 ‘세계 최초’ 특허기술들은 안 대표의 자부심으로 꼽힌다. 크루셜텍은 현재 지적재산권 약 1050건을 보유하고 있고, 이중 BTP 관련 기술만 400여건에 달한다. 특허공격에 나설만도 하지만, 아직까지 관련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공격은 자제하고 있는 상태다.
안 대표는 “그동안 우리가 특허에 집착하다보니 관련 시장을 키우지 못한 누를 범했다”며 “전 세계 업체들이 우리 특허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만큼, 일단 시장 확대 측면에서 단순 모방제품들은 용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된 시점에서 악의적인 기술침탈 시도가 발생한다면 적극적인 특허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안 대표는 “향후 시장이 커진 상황에서는 우리의 권리를 로열티, 소송 등으로 적극 찾을 것”이라며 “대상은 중국, 대만 등 글로벌 업체들이 될 가능성이 크고, 특허전략 변화 시점은 내년 하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크루셜텍은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 50억원을 기록했다. 12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지난해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안 대표는 올해를 ‘실질적인 성장의 해’로 봤다. 내년에는 더욱 성장폭을 확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적자 상황에서도 투자를 이어가던 안 대표의 뚝심이 내년엔 더욱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 대표는 “내년에는 내부적으로 올해보다 2배 성장하겠다는 목표치를 세웠다”며 “올해도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좋았던만큼, 내년에도 하반기가 더욱 긍정적인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든 그 이상을 목표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안 대표는 국내 중소ㆍ중견기업 정책에 대해서도 짧지만 굵은 조언을 던졌다. 자금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부가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킨 경험과 함께 대표적인 ‘벤처 1세대’로 꼽히는 안 대표인 만큼, 충분히 할 수 있는 쓴소리다.
안 대표는 “좋은 인재가 없으면 좋은 사업, 아이디어도 없다.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대한 이미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부터 명칭을 혁신기업청, 첨단기업청 등으로 바꿔야 한다. 인식 변화와 함께 좋은 환경부터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