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0만 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5900만 달러”
“6000만 달러”
…
“6500만 달러, 더 없습니까?”
“네, 6600만 달러”
“6700만 달러”
…
“9300만 달러”
“마지막 기회입니다. 더 없습니까?”
“9400만 달러”
“9500만 달러”
“진짜 마지막 기회입니다.”
“9500만 달러(약 1097억원)!”…
지난 2010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진행된 파블로 피카소의 1932년 작 ‘누드, 초록 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 경매 현장의 모습이다. 경매사가 경쾌한 리듬에 맞춰 응찰가를 부를 때마다 작품 가격은 100만 달러(약 11억5400만원)씩 뛴다.
숨막힐 듯 긴장감이 흐르던 청중 사이에서는 가격이 뛸 때마다 탄성이 쏟아지고 여기저기서 입찰 의사를 표시하는 패들이 들썩거린다. 경매사는 이따금씩 우스갯소리로 경직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격이 예상가를 한참 뛰어넘었다 싶으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 여세를 더 몰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쯤에서 마무리할 것인가’ 탐색전도 잠시, 경매사는 “마지막 기회”라며 경매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경매사의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가격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더이상 패들이 올라오지 않으면 최종 낙찰을 알리는 망치소리와 함께 경매는 끝이 난다. 그때가 바로 예술품 경매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일반적으로 경매에 나오는 예술품에는 경매 참가자가 낙찰가의 기준으로 삼는 예상 가격이 매겨진다. 예상 가격은 경매회사가 전문가 등과 논의를 거쳐 현 시세를 감안해 대략적인 범위에서 정한다. 최근 몇 년 사이 경매 출품작들의 낙찰가가 예상 가격을 크게 웃돌았다는 건 경매 참가자들이 예술품 시장의 앞날을 그만큼 낙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예술품 시장이 급성장하는 데는 수요 측에서만 원인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미술품 공급자 측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부유층은 작품이 출품되면 경기에 관계없이 산다. 그러나 불경기일 때는 판매자가 비싼 값에 내놓으면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좋은 작품을 움켜쥐게 되는데, 이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고가에 거래될 만한 작품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고 말한다.
최근 경기가 호전되고 인플레이션율이 개선되자 향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예술품 시장에 다시 고가의 작품이 등장해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최근 경매 시장에서 잇따라 깨지는 예술품 신고가의 과열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몇 년간 예술품에 기록적인 가격이 계속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투기 목적의 매수세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상 과열 현상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