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가 좋다] ‘하부투어 6년’ 지옥서 살아온 신데렐라 최혜정, “바닥을 치면서 성장했죠!”

입력 2015-12-02 10:45 수정 2015-12-0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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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난 프로골퍼 최혜정. 골프채를 잠시 놓고 재활치료에 한창인 그는 요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선수로 남는 것이다. (오상민 기자 golf5@)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난 프로골퍼 최혜정. 골프채를 잠시 놓고 재활치료에 한창인 그는 요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선수로 남는 것이다. (오상민 기자 golf5@)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가 열린 경기 용인의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리더보드엔 ‘최혜정’이란 이름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2000년대 중후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경험하고 돌아온 ‘주부 골퍼’ 최혜정(31ㆍ볼빅)이 아니다. 자그마치 6년간이나 하부(2~3부) 투어 생활 속에서 잡초처럼 살아남은 ‘무명 골프’ 최혜정(24)이다.

그는 시즌 최종전 조선일보ㆍ포스코 챔피언십에서 ‘장타왕’ 박성현(22ㆍ넵스)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프로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6년간의 기다림 뒤 만들어낸 감동 드라마였다.

스폰서도 없이 홀로 견뎌온 그의 투어 생활은 ‘바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었다. “아, 이젠 그만 해야 하나….”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은데….”

그러던 그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각종 타이틀 경쟁으로 남은 힘을 모조리 쏟아내야 했던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이제 그에겐 ‘무명’이라는 말보다 ‘신데렐라’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우승한 뒤) 정신이 없어요. 축하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고마운 분들 찾아다니며 일일이 인사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죄송할 뿐이죠.”

요즘 최혜정은 24시간을 쪼개고 쪼갠다. 이젠 더 이상 쪼개 쓸 시간도 없다. 개인 운동만으로도 바쁜 연말을 보내야했을 그다.

하지만 의외의 답변이 귀를 쫑긋 세웠다. “사실 시합 끝나고 제대로 운동한 날이 없어요.” 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단다. “시즌 중에 부상을 달고 살아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거든요. 큰 부상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네요(웃음). 운동을 잠시 쉬면서 완벽한 몸을 만들고 있죠.”

그의 오전 일과는 병원에서 시작된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에 한창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기자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잠시 만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 뒤 탈의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뒤 한결 정리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는 우승 후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했다. “꼭 우승을 해서가 아니라 조금씩 변하는 내 모습을 발견해요. 예전에는 자존감이 많이 낮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커졌고요. 이젠 나를 믿기로 했죠.”

그가 우승컵을 들었을 때 한결같은 의문이 쏟아졌다. “이렇게 잘하는 선수가 왜?”라는 물음이다. 그는 운동 효율성을 거론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는데, 사실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했죠. 남들은 아빠따라 연습장 갔다가 골프 재미에 빠져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에요. 골프를 왜 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다보니 운동 효율성도 떨어졌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난 프로골퍼 최혜정. 그는 6년간의 하부 투어 속에서 살아남은 신데렐라다. 그래서 그는 끝가지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오상민 기자 golf5@)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난 프로골퍼 최혜정. 그는 6년간의 하부 투어 속에서 살아남은 신데렐라다. 그래서 그는 끝가지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오상민 기자 golf5@)

그러던 그에게 변화가 생긴 건 스물한 살 때부터다. “그때 골프가 재미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가며 연습했는데 오히려 효과가 빨리 나타나더라고요. 지금은 아주 즐겁죠. 제 골프는 이제부터 시작이에요(웃음).”

요즘 그는 살 맛 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1~2년도 견디기 힘든 하부 투어 생활에서 벗어나 첫 우승까지 달성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는 골프 입문과 동시에 일상이라는 게 없었다. 눈만 뜨면 운동을 시작했고, 잠 들기 전까지 골프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운동선수가 운동 말고 다른 걸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죠. 한 가지 있다면 전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굳어있던 최혜정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잠 자는 시간을 쪼개서 심야영화를 볼 만큼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얼마 전엔 동생하고 ‘내부자들’을 봤는데 참 따뜻한 영화더군요. 요즘은 잠 잘 시간 쪼개가며 심야영화라도 볼 수 있지만 시즌 중엔 그럴 여유조차 없어요.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TV나 인터넷을 통해 보죠. 귀신 나오는 영화만 아니면 다 좋아요(웃음).”

최혜정은 이달 28일 두바이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두바이는 날씨와 운동 환경을 볼 때 전지훈련 최적지란다. “지금 두바이는 한국의 가을날씨와 비슷해요. 운동하기에 아주 좋죠. 내장객도 거의 없는 만큼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는 내년 2월 22일까지 8주 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할 예정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키워 비거리를 늘리고 쇼트게임을 집중 연습해 내년 시즌 2승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노력형과 천재형이 있다면 난 전형적인 노력형이에요. 타고난 운동신경 같은 건 전혀 없거든요. 그래서 속상할 때도 많았죠. 하지만 악으로 버티는 건 자신있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늘 꾸준히 노력해서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저도 믿지 않았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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