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법 3년] 날치기·폭력 사라졌지만… 與野 기싸움에 ‘식물국회’ 전락

입력 2015-12-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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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의 3 찬성’ 조항에 입법지연 속출… 與野 불만 속 국회의장 권한만 강화

▲지난해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진과 시선, 국회선진화법이 바꾸어 놓은 것들' 사진전에서 새누리당 김세연(왼쪽부터) 의원, 이석현 국회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이 국회 선진화법 이전 국회 대립상을 기록한 보도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진과 시선, 국회선진화법이 바꾸어 놓은 것들' 사진전에서 새누리당 김세연(왼쪽부터) 의원, 이석현 국회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이 국회 선진화법 이전 국회 대립상을 기록한 보도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2년 5월 30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국회 선진화법이 어느새 3년차를 지나 4년차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루탄이 등장한 지난 18대 국회에서 몸싸움과 폭력을 몰아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법은 당초 기대처럼 폭력을 몰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다수 여당과 정부가 의지를 갖고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몇 년 동안 계류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나타나면서 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 폭력은 그만”… 선진화법 도입 = 일명 ‘몸싸움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국회 선진화법은 18대 국회의 일련의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2월 18대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상정 저지에 나선 야당 의원들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 출입문을 해머와 전기톱, 소방호스 등으로 부수고 진입했다.

다음해 7월22일에는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여야가 본회의장 점거를 위해 다투는 과정에서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다. 급기야 2011년 11월에는 본회의장에 최루탄까지 등장했다.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 동의안 단독 처리를 시도하자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의장석 앞에서 최루가루를 뿌린 것이다.

이처럼 민의의 전당이 돼야 할 국회에서 몸싸움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 빈번하고 또 세계적인 놀림거리로까지 전락하자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제기됐다. ‘폭력 국회’를 비토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당시 새누리당 홍정욱 의원이 법안 기초를 잡았고,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추진에 나섰다. 여당의 쇄신파, 야당의 온건파 의원들이 가세했다.

결국 ‘국회 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은 2012년 5월 2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개정안은 우선 다수 여당의 단독 처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한 경우 등으로 제한했다. 또 시간제한 없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도 도입했다. 그러면서도 기약없이 소수당에 발목을 잡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쟁점 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제’(패스트트랙)를 신설하기도 했다.

◇다수당 독주 막는다지만… 소수당 발목잡기 등 우려 = 하지만 개정안을 놓고 우려가 제기됐다. 여당의 ‘법안 날치기’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국회 독주를 막기는 했지만 자칫 대치 상태가 길어지면 ‘식물국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개정안을 끝까지 반대했던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5분의 3 규정은 다수결의 원칙과 맞지 않다”면서 “개정안은 소수파의 발목잡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식물국회를 만들어내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영선 의원도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의원의 3분의 1이 반대하면 법안 자체가 다뤄지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본회의 표결에 정몽준·조해진·안형환 의원 등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총 48명이 반대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본회의에 앞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선 반대 의견이 앞다퉈 나왔다.

개정안 표결이 끝난 뒤 정의화 국회의장 직무대행은 “개정안이 과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도 깊은 논의와 검토를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라고 우려했다.

◇우려가 현실로… 與도 野도 불만 = 불만은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이들이 지적한 부분은 바로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5분의 3 이상(180석)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한 조항이다. 19대 국회의 과반의석을 확보하고도 주요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자 새 지도부에서부터 문제가 제기됐다. 실제로 양당에서 중점적으로 내세우면서도 몇 년째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입법지연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김무성 대표는 수차례 “비능률적인 국회선진화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밝히곤 했다. 새누리당은 현재 당내 주호영 의원을 팀장으로 하는 ‘국회법 정상화 TF(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다음 20대 국회에서 법안 처리에 필요한 180석을 내년 총선에서 확보하는 한편, 선진화법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야당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 및 예산부수 법안을 법정시한인 12월 2일 본회의에 자동부의 되도록 정해지면서 협상력이 대폭 약화됐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여당이 예산을 정부·여당안으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3일째 잠을 못자고 있다”고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의 경우 야당과의 협상에 실패하더라도 정부 원안이 자동으로 부의되는 만큼, 여유있게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됐다.

국회의장의 경우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뜻밖의 권한 강화라는 수혜를 입기도 했다. 선진화법은 국회의장에게 예산부수법안 지정 권한과 예산안 및 예산부수법안에 대한 직권상정 권한을 허용하고 있다. 선진화법에서 주어진 권한을 처음으로 휘두른 것은 바로 법 개정 당시 누구보다 강한 우려를 제기했던 정의화 국회의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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