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딱지떼기①] 부검의 현장에서 기자의 역할을 배우다

입력 2015-12-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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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9기 수습인 박규준(왼쪽부터), 이광호, 이새하, 김하늬 기자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이투데이 9기 수습인 박규준(왼쪽부터), 이광호, 이새하, 김하늬 기자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알몸의 남자가 스테인리스 테이블로 옮겨진다. 남자의 얼굴은 창백하다. 눈은 감겨있고 입은 반쯤 벌어져 있다. 전문 사진관이 사다리로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마른 목 아래로 메스가 닿자 가슴과 배가 갈라지며 피부 속 지방이 드러난다. 근육과 뼈를 걷어내고 폐, 심장, 췌장 등을 분리해 살핀다. 법의관은 장기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죽은 자가 말하지 못한 억울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미세하고 엄숙한 작업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센터에서다.

지난 9일 오전 9시, 서울 날씨는 흐리고 영하 1도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제250기 수습기자 교육 8일 차로 부검 현장을 견학했다. 국과수 본관 왼편을 지나자 낯선 분위기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계단 아래 부검 참관실에 들어서니 유리창 너머로 회색 부검대가 눈에 들어왔다. 주검을 마주한 순간, 긴장은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바뀌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경. 사진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제250기 수습기자 교육 동기 서울경제 이종호 기자로부터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경. 사진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제250기 수습기자 교육 동기 서울경제 이종호 기자로부터 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이란 결과 자체는 같지만,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연스럽게 노화로 죽거나 자살, 사고 등 외부적 원인으로 갑작스럽게 죽을 수도 있다. 차가운 부검대에 오르기까지 이들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시신들은 부검대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연결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참관실에서 아무 소리 없이 진행되는 부검은 사뭇 비현실적이다. 잠이 든 것 같은 시신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눈부신 조명과 금속 재질의 부검 도구들이 온몸에 집중되는 것은 죽은 자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 이들에겐 덤덤해 보였다.

죽은 자에게 부검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부검(autopsy)의 어원은 auto(self)의 ‘자신’과 opsy(optical과 같은 어원)의 ‘본다’로 ‘직접 본다’는 뜻이 담겨 있다. 법의관은 죽은 자의 눈을 대신해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사연을 알아본다.

해부가 단순히 내부를 알아보는 것이라면 부검은 사람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부검은 전문가에게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양경무 국과수 중앙법의학센터 법의관은 “부검하면서 죽은 사람을 계속 본다는 자체가 힘들었다”며 “화장실에서 넘어져 머리를 찧은 아버지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던 나 자신이 서글펐다”고 토로했다. 부검 전문가에게도 죽음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진실을 지키는 과학의 힘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현실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힘은 기자에게도 중요하다.
▲진실을 지키는 과학의 힘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현실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힘은 기자에게도 중요하다.

죽음은 하나의 보편적 현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겪은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있다. 부검은 그런 이야기를 죽음에서 밝혀내는 과정이라 느껴졌다. 기자로서 현상을 보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도 이와 같다. 부검 과정이 죽음의 현장에서 진실을 꺼내는 과정이라면 기자는 살아있는 현실로부터 진실을 꺼낸다. 이 두 가지는 달라 보이지만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언론사 간 속보 전쟁으로 팩트는 과장되고 오보는 마구잡이로 쏟아진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친지 오래다. 기자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부검 현장 견학은 이런 현실에 맞서 기자가 어떻게 하면 진정성을 가지고 팩트를 다룰지 배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 수습기자로서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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