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캘란이 대규모 시음회를 열었다. 약 한 달 동안 4000명 정도를 초대하는 큰 규모의 행사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렀다는 건 그만큼 제품에 자신이 있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싱글몰트 위스키 자체가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데, 이번 시음회를 통해 대중에게 한 발짝 다가서겠다는 맥캘란의 포부가 느껴졌다.
내게 맥캘란은 소문만으로도 기가 죽는 ‘엄친아’ 같은 존재다. “걔가 그렇게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심지어 얼굴도 잘생겼다며?” 뭐 이런 느낌?
싱글 몰트 위스키의 성지라 불리는 스페이사이드 중심에서 태어난 맥캘란은 1824년 스코틀랜드에서 최초로 판매권을 획득한 증류소 중 하나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싱글 몰트 위스키의 귀족이다.
행사장에는 맥캘란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맥캘란의 하이엔드 라인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 전, 팝업바에서는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싱글몰트 위스키 베이스의 칵테일을 맛볼 수 있었다. 맥캘란 셰리 오크 12년 산에 시나몬 시럽과 진저에일을 넣고 시나몬 스틱을 통째로 꽂아주는 ‘셰리몬’은 위스키 본연의 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칵테일이다. 쉽게 말하자면 작업주로 매우 훌륭하다는 이야기다.
시음회는 전태규 ‘맥캘란 브랜드 앰배서더’가 문을 열었다. 그는 유려한 말쏨씨로 위스키의 개념과 분류 그리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번 시음회에서는 최근 출시한 한정판 위스키인 맥캘란 에디션 넘버 원을 비롯해 맥캘란 셰리오크 12년, 파인오크 15년 까지 총 3가지 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건배’를 ‘슬란제바(Sláinte Gaelach)’ 라고 한다지? 한 번 크게 외치고 본격적으로 마셔보자.
셰리오크 12년, 파인오크 15년, 그리고 에디션 넘버 원을 순서대로 마셔봤다. 시음은 맛을 보기 전에 색과 향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운 호박빛이다. 전용잔을 코에 가까이 대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니 알코올 향이 코를 강하게 스친다. 어지러운 머리를 잠시 진정시키고 다시 한 번 향을 음미할 때가 되어서야 위스키는 비로소 알코올 안에 숨겨둔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혀로 셰리오크 12년의 즐길 차례다. 입안을 적신다는 느낌으로 한 모금을 조심스럽게 머금으면 스파이시한 맛이 혀에 마구 잽을 날린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곧 셰리오크 특유의 강하고 진득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져 나간다. 빈속에 40도가 넘는 술을 마셨더니 호박색의 액체가 식도를 넘어 위까지 내려가는 느낌이 그려지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파인오크 15년은 스파이시함은 약하지만 대신 꽃향기, 시트러스 등 복합적인 맛과 향이 입안에서 여의도 불꽃축제처럼 팡팡 터진다. 마신 후 입안에 남는 부드럽고 달콤한 바닐라 향도 일품이다. 파인오크는 대중에게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한 맥캘란의 도전이다. 습기와 오염에 약한 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종이 라벨을 고집하던 맥캘란이 코팅지를 라벨에 도입한 때가 바로 십여 년 전에 출시한 파인오크 시리즈부터였다. 맛과 향의 축제 같은 파인오크 시리즈는 위스키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 여자들이 즐기기 좋겠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맥캘란 셰리오크 12년, 파인오크 15년, 에디션 넘버 원]
마지막은 에디션 넘버 원이다. 얼마 전 출시한 제품이며 10만원대로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제품이다. 국내에는 단 1,000병만 들어왔기 때문에 이 시음회가 열리는 동안 모두 소진된다면 더 팔 수 없다. 어쩌면 지금 내가 마시는 것이 국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즐기는 잔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이 한정판의 매력이다.
여덟 종류의 셰리 오크통으로 숙성해서인지 다른 것보다 더 진한 색을 띤다. 라벨 색도 오크통의 나무 색을 표현했단다. 알코올도수가 48%로 높은 편이지만 맛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다. 11년 된 원액부터 25년된 원액까지 섞었기 때문이다. 외유내강 타입인지, 부드러운 첫인상과는 달리 입안에 도는 여운만큼은 어떤 것보다 끈질기다. 이미 술이 목구멍을 넘어간 후에도 끝까지 혀끝을 붙잡고 아직 나 여기 있다고 존재감을 뽐낸다. 개인적으로는 부드러우면서 강한 셰리의 향이 내 취향에 잘 맞더라.
많이 마신 것도 아니건만 시음회를 나올 때 나는 약간 취해있었다. 어렵고 불편했던 엄친아와 술 한잔 기울이며 조금은 친해진 기분이다. 다음에 만날 땐 반갑게 아는 척도 하고, 우리 말도 트자고 호기도 부리면서 말이다. 하긴, 이렇게 맛있는 술이 있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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