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대체로 순하다. 성질이 매우 온순한 사람을 양 같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뿔이 있는 숫양은 암양과 달라서 무엇이든 들이받기를 좋아한다. 2015년 을미년은 음양(陰陽)의 이치로 볼 때 남자의 모습을 한 숫양이 될 것이라고 한 역술인이 있었다. 그래서 숫양처럼 경쟁자와 싸움을 하고 누구에게든 힘든 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연말을 맞아 돌아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뿔은 잘못 쓰면 스스로 곤란해진다.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가 뿔이 걸려 나가지도 물러가지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저양촉번(羝羊觸蕃)이다. 羝는 숫양 저, 藩은 울타리, 경계, 수레의 휘장, 속국(屬國) 등을 뜻하는 ‘번’자다.
저양촉번은 주역 대장(大壯)괘에 나온다. “구삼. 소인은 씩씩한 기운을 쓰지만 군자는 그것을 쓰지 않는다. 마음이 곧아도 위태로울 것이다. 숫양이 울타리에 걸려서 그 뿔을 상한다.”[九三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 厲 羝羊觸藩 羸其角] 그래서 “물러나지도 나가지도 못한다”[不能退 不能遂]는 것이다.
사람이 한갓 용기만 숭상할 줄 알고 옳은 것을 헤아리지 못하면 하는 일이 아무리 바르다 해도 마침내 과실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는 일이 바르지도 못하다면 어찌 그 종말을 옳게 맺을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그래서 군자는 지나치게 씩씩한 것을 삼간다.
채근담에도 저양촉번이 나온다. “뜻을 세움에 한 걸음 더 높고 크게, 보다 확고하게 하지 않는다면 먼지구덩이에서 옷을 털고 흙탕물에 발을 씻는 격이니 어떻게 초연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처함에 한 걸음 물러서 겸허하게 자기를 낮추지 않는다면 부나비가 촛불로 날아들고, 숫양이 울을 들이받는 격이니 어떻게 안락할 수 있겠는가?”[立身不高一步立 如塵裡振衣 泥中濯足 如何超達 處世不退一步處 如飛蛾投燭 羝羊觸藩 如何安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