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결이 화제다. 당초 법원 안팎에서는 집행유예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동안 수천억원대 기업 범죄로 기소된 재벌 총수들은 링거를 꽂은 채 법정에 나와 아슬아슬하게 실형을 피하고는 했다. 이게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피고인이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고려했다’거나 ‘피해 회복이 된 점을 반영했다’는 문구도 관용어처럼 뒤따랐다.
그러나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며 “법 질서를 경시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재산 범죄를 저질렀다면 엄중히 처벌받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자산을 보유한 기업가가 범행이 발각된 후에 행한 피해 회복 조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도 했다. 이 회장의 건강 문제 역시 “집행의 문제일 뿐, 양형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탈세 251억원. 횡령 115억원. 배임액은 산정 불가. 재벌이 아닌 사람이 대형 로펌의 변호 없이 재판을 받았다면 과연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했어도 큰 무리가 없었던 사안인데, 소신있게 양형 사유를 밝혔다”고 평가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왜 하필 우리 사건에서 이런 결론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당혹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재판부도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 회장이 하루 빨리 경영에 복귀하는 것이 경제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했다”고 미리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건전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통해 진정한 경제발전을 이뤄야 하며, 나아가 국민에게 공평한 사법체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많은 이들이 집행유예를 예상했던 것은 그만큼 우리가 ‘공평하지 않음’에 익숙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선고 결과를 지켜보면서 나부터 그 무뎌짐을 꼽씹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