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업을 거창하게 ‘산업’으로 분류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나라는 연예인들은 물론 매니지먼트와 기획사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통칭 ‘딴따라’로 부른다. ‘딴따라’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연예에 종사하는 배우, 가수, 무용가들을 통틀어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어귀에 요란하게 들어서는 남사당패를 열렬히 환영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천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중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그럼에도 ‘연예산업’은 우리 인간 본성의 깊은 곳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공급자나 소비자나 가릴 것 없이 그 관심과 애정이 지역과 계층은 물론 더 나아가 나라와 인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정도로 뜨거워짐을 느낀다.
내가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던 60, 70년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조국 근대화’에 모든 국민이 인생을 바쳤던 시기라, 고작 해야 한두 개의 쇼프로그램과 흑백 더빙 영화 몇 편이 선배 세대의 고단한 삶을 가랑비처럼 적셔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현 JTBC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동양방송 TBC가 본격적인 상업방송을 천명하며 미국과 서유럽의 현대 문명을 영화와 드라마,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적으로 실어나르면서 우리는 비로소 구체적인 ‘선진조국’의 미래상을 미디어를 통해 꿈꿔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할리우드와 빌보드차트로 대변되는 서구 문화의 본격적 ‘수혜자’인 나를 포함한 지금의 50·60대들은 선배 세대의 가락과 춤사위를 모태 신앙처럼 간직한 채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팝뮤직과 서구 패션으로 무장하고 스스로를 단군 이래 최초의 창조적 문명 세대라고 자부해왔다.
그 결과가 ‘세시봉’이고 ‘가자, 장미여관으로’였던 것이다. 그 이후에 쏟아져 나온 숱한 노래와 영화·드라마들은 우리들의 머리와 가슴을 전에 없이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고, 콘텐츠 소비자들을 스스로 공급자가 되고픈 욕망에 빠트리는 묘한 마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묘한 마력에 이끌려 내가 직접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싶었고, 우리도 미국처럼 밀리언셀러 음반시장이 폭발하던 80, 90년대에 마치 꿈을 꾸듯 많은 돈을 벌기도 했었다. 그 시절은 ‘딴따라’라는 별칭이 그리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연예산업 종사자들이 자본주의의 상층부에 당당히 진입할 수 있다는 산업적 저력을 사회 전반에 과시했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 K-Wave의 모든 자양분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그 자양분은 장르 구분 없이 문화산업 전반에 엄청난 사업적 기회와 기업화의 토대를 구축해주었고, 그 결과가 내가 대표로 있는 ‘웰메이드예당’을 포함해 유명 3대 음반기획사 등 기업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등장이다.
우리 회사는 현재 주력인 매니지먼트 사업을 중심으로 드라마 제작과 공연기획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 전 영역에 걸쳐 사업부와 자회사를 운영 중이며, 오랜 세월 이 사업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인력을 활용해 시스템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더군다나 코스닥 상장기업으로서의 의무와 책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보니 기존의 관행과 부딪치는 요소들을 개선하고 제거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의 매니지먼트 계약에서 과도한 배분율을 요구하는 연기자나 가수들과의 신경전과 마찰은 기본이고 지망생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의 비용처리 문제, 까다로운 공연장 섭외 및 복잡한 티켓팅 관리, 제조업 기반 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업무의 비효율성 등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토론 케이스로 제공될 만한 각종의 경영 사례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나마 요즘은 경영자와 직원, 소속 연기자, 그리고 그 연기자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내외부 스태프가 기업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 양보하고 인내하는 풍토가 만들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딴따라’로 비하될 만한 사건·사고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 회사도 얼마 전 소속 유명 연기자의 인감과 전속계약서를 누군가 위조해 연예관계자들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받아 가로챈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진범이 구속되고 3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되어 그간의 스트레스와 마음 고생이 잘 정리되기는 하였으나 ‘K-Wave’ 바람을 타고 시장의 파이가 급격히 커지면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특히 중국시장을 상대로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애써 일군 한류시장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몹시 우려스럽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엔터산업과 관련하여 중국시장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로 유튜브가 새로운 콘텐츠 유통채널로서 그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살짝 지겨워지던 ‘한류’가 그 사업 영토를 확대·개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다시 확보하게 된 것이 최근 2년간의 일이다.
김수현과 전지현이란 발군의 연기자들이 중국 대륙을 휩쓸고 나자 우리 회사 소속 연기자 이종석의 드라마가 실시간으로 중국 소비자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중계되고 걸스데이의 공연장이 중국 유커들의 여행 패키지가 되는 등 우리 회사도 요즘 중국 수혜주로 증권시장에서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 초부터는 뜬금없는 중국 기업들의 회사 탐방과 묻지마식 투자 제의에 한때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가장 큰 놀라움은 중국 연예관계자들의 막무가내식 ‘한류사랑’이다. 우리가 ‘미제’라면 농약도 마신다고 했던 시절이 있었듯, 혹 그들에게도 ‘메이드 인 코리아’가 곧 꺼져버릴 환상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의심이 동시에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그저 놀기 좋아했던 기질 하나로 겁 없이 덤볐던 엔터사업에 이제는 중국 친구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마치 이마트에서 장 보듯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사와 영화배급사, 드라마 제작사들을 사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경영자로서 두 가지를 명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중국은 단지 우리의 수출 대상국인가 아니면 국내 내수시장의 연장선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흔히 중국의 ‘바이 코리아’를 중국 버블을 이용해 주식시장에서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 행위로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막상 시장 진출을 위한 협상을 하다 보면 중국은 우리나라 시장을 자기들 나라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행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두번째, 지금부터 우리는 중국시장을 상대로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의 경험과 노하우를 자양분 삼아 반도체와 핸드폰 시장에 이어 한류 콘텐츠를 당당히 국부 축적의 핵심 자원으로 키웠다. 그러나 점점 다양성을 상실한 채 마치 복제하듯 비슷비슷한 음악과 가수, 연기자들을 생각 없이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더 큰 고민은 그럼에도 아직은 장사가 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우리나라 엔터 업계에서는 ‘촉’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심지어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해 기업화에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회사의 주요 임원들 사이에서도 사업의 핵심 요소로 ‘촉’을 중시하는 경향이 아직도 강해 보인다.
너무 지나친 시스템화로 엔터 사업을 계량화하는 우를 범하는 것도 문제지만 시장 규모가 1천억원대를 넘어 조 단위로 커지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그것도 거대 중국시장을 상대로 ‘촉’과 ‘짬밥’을 내세운 전근대적인 접근 방식은 ‘한탕주의’에 기대 수많은 코스닥 투자자들을 울렸던 우리의 아주 가까운 과거에 대한 망각이라고 생각한다. 근신하고 성찰할 때이다.
고등학교 시절, 가슴 두근대며 기다렸던 미국 MGM사 엠블렘 속 사자의 포효와 함께 시작되는 ‘주말의 명화’ 시간. 그때의 생생한 추억은 아직도 내게 엔터 사업의 근본은 ‘꿈’이라는 명제를 늘 잊지 않게 한다. 하지만 그 ‘꿈’에 홀려 이 사업에 뛰어든 지 25년을 훌쩍 넘겨 감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엔터 기업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지금, 나는 그 ‘꿈’을 상품화하는 지난하고도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이제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왜, 다른 건 할 줄 모르니까.
매일 아침 시간은 여느 회사의 경영자처럼 책상 위에 쌓인 시커먼 결재판들과의 씨름으로 소진한다. 그 결재판 사이에 끼워져 있는 기안서에는 직원들의 지난 하루 고단한 고민과 노력의 결과가 각종 미사여구와 복잡한 숫자들로 변환된 채 나의 마지막 결정을 압박해 온다. 간이영수증 몇 장으로 수백만원의 비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증빙 처리해 왔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옛 버릇이 남아 거침없는 욕지거리 미팅으로 서로 진심(?)을 확인하며 또 이어질 야근과 비상대기를 ‘꿈’ 하나로 버텨가는 모든 ‘딴따라’들에게 격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현서 대표 프로필
1963년생
‘월간 온에어’(엔터테인먼트 전문 월간지) 발행인 역임
스카이엔터테인먼트 대표 역임
초록뱀E&M 대표 역임
혼성그룹 쿨, 조관우, 성시경 등 다수 음반 제작
강호동, 유재석, 김성주, 고현정 등 MC, 배우 매니지먼트 대표
웰메이드예당 연혁
1976. 반포산업 주식회사 설립
1999. 코스닥증권시장 등록
2006. ㈜스타엠으로 상호 변경
2008. ㈜웰메이드 스타엠으로 상호 변경
2009. 영화 ‘황해’ 메인 투자(2010. 개봉)
2012. 영화 ‘조선미녀삼총사’ 제작 (2014. 1. 개봉), MBC 일일드라마 ‘오자룡이 간다’ 제작
2014. ㈜웰메이드예당으로 상호 변경
2014. MBC 주말드라마 ‘장미빛 연인들’ 공동제작, JTBC 종편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 제작
2015. 자회사 드림티엔터테인먼트 코넥스 상장(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