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아이패드 프로는 왜 태어났을까

입력 2015-12-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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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 기대작이었던 아이패드 프로를 벌써 3주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 이 거대한 태블릿의 존재론적 의미를 두고 네티즌 여러분이 물고 뜯고 싸우는 광경을 보며, 아이패드 프로는 정말 왜 태어난 걸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먼저 가장 격하게 어그로를 끌고 있는 ‘아이패드 프로가 PC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많은 분이 이미 대답을 알고 계시겠지만, 절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솔직한 얘기로 애플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맥도 팔아야 하는데 아이패드 프로로 팀킬을 자행해 무엇하겠는가.

“아이패드 프로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렇다면 (애플이 의도한)아이패드 프로의 포지션은 어디쯤일까? 맥북이나 기존 아이패드의 영역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그 자리는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니까. 최근 스마트폰이 몸집을 키우고 성능을 높이며 아이패드의 판매량을 자꾸자꾸 갉아먹었다. 그래서 장사 수완 좋은 애플은 새로운 제안을 계획한다. 이전에 아이패드를 처음 선보일 때와 비슷한 전략이다.

2010년, 샌프란시스코 예바 부에나 센터에서 스티브 잡스가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했을 때 사람들은 생각했다. 아니 스마트폰도 있고, PC도 있는데 저게 왜 필요해? 다들 콧방귀를 뀌고, 뒤돌아서서 애플스토어를 향했다.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겠다더니 다들 사기 시작했다. 애플 효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저 브랜드가 갖고 있는 종교적(?!) 입김도 분명 작용했다. 그러나 아이패드 성공의 가장 큰 이유는 사용자도 미처 눈치채지 못한 니즈를 제조사가 먼저 긁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너 이거 써볼래? 아마 넌 모르고 있었겠지만, 넌 이 제품이 사고 싶었을 거야. 내가 알아.”

그리고 애플은 두 번째 아이패드發 빅뱅을 감행한다. 이것이 바로 아이패드 프로다. 안타깝게도 높은 확률로 아이패드 프로는 1세대 아이패드만큼의 반향은 일으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당연히 비싸다는 점도 한몫한다. 아이패드 프로에 스마트 키보드와 애플 펜슬을 곁들여 구입하면 어지간한 노트북 가격을 초과해 버린다. 게다가 별도 구매해야 하는 고급 입력장치들이 주는 사용자 경험은 전문가에게나 필요할 법한 난해한 세계로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제품명조차 ‘프로’가 아닌가! 일반 사용자들이 겁을 먹기 좋은 요소다.

“그래서 아이패드 프로는 PC를 대체할 수 있는가?”

이제 다시 아이패드 프로와 PC를 비교하는 뫼비우스의 띠 논쟁으로 돌아가 보자.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로 돌아가는 아이패드 프로를 PC와 비교하긴 어렵다. 창을 수십개 늘어놓고 자유자재로 멀티태스킹을 구현하며, 마우스로 조작할 수 있는 PC 운영체제와 iOS는 절대 동일한 생산성을 가질 수 없다. iOS9도 스플릿뷰 등을 통해 멀티태스킹 시도를 하고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인지 일부에선 아이패드 프로가 OS X를 지원하지 않은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하더라.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아이패드는 터치 조작을 기반으로 하는 기기다. 생산성을 위해 터치를 빼고 마우스를 끼워 넣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더 이상 아이패드가 아닌 다른 기기가 되어버리겠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맥패드 정도일까.

그렇다면 아이패드 프로는 PC 수준의 생산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형편없는 기계일까? 아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여태까지의 어떤 iOS기기보다 높은 성능을 자랑한다. 게다가 12.9인치 화면을 떠받쳐주는 다양한 앱을 통해 PC에서 이루어지던 작업의 ‘일부’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직관적 인터페이스를 갖췄다. MS 오피스로 문서를 작성하더라도 아주 복잡한 툴이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충분히 아이패드 프로 만으로 작업이 가능하다. 애플 펜슬의 정밀한 스케치 능력이나 키보드 커버에 대해서는 굳이 덧붙여 설명하지 않겠다. 확실히 이 기기는 여러 면에서 생산성을 업그레이드했다.

“왜 세단과 SUV를 비교하는가”

그런데 자꾸 잡음이 들리는 이유는 애초에 데스크톱과 아이패드 프로를 비교하는 구도로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니, 왜. 왜 그랬을까. 끝내주게 멋진 세단을 공개하며 “이건 4인 가족을 태우고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죠!”라고 설명한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닌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 아이패드 프로는 매력적이고 훌륭한 기기지만, iOS로 세상 모든 생산성을 커버할 순 없다.

자, 그럼 데스크톱을 대체해야 한다는 지긋지긋한 생산성 타령을 빼고 12.9인치의 아이패드 프로를 다시 바라보자. 건축가나 디자이너만 이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일반인 접근금지 콩깍지도 빼고 보자. 아이패드 프로는 재미있다. 정말이다. 나는 요즘 집에서 시간 나는 대로 아이패드 프로를 붙들고 있다(물론 달리 말하면 너무 커서 평소엔 잘 안 들고 다닌다는 뜻도 된다). 애플펜슬로 꽁냥꽁냥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즐거워서다. 새로운 드로잉 앱을 구입하고 여러 펜 툴을 사용해보며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경험은 아마추어인 내게도 너무나 큰 의미다. PC에 와콤 스타일러스를 연결해야만 가능하던 작업이 태블릿 화면 위에서 펼쳐지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패드 프로에서 드로잉 앱들이 구동되는 느낌도 너무나 가볍고 빠르다. 큰 맘 먹고서야 하던 그림 작업이 쉽고 가까워진 것이다. 오래 잊어버리고 있던 취미를 찾은 순간이었다. 모든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성능도 마음에 들고, 같은 영상을 봐도 훨씬 입체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스피커도 감동적이다.

“누가 아이패드 프로를 원하는가?”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누가 아이패드 프로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소수의 ‘프로’들만 이 제품이 필요할까? 그렇게 거창한 기기는 아니다. 물론 전문가들에게도 가벼운 스케치나 아이디어 노트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럿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회의하는 용도로 써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의 영역을 꿈꾸는 일반인들이 아이패드 프로에 눈독 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무료한 일상에서 좀 더 스타일리시한 방법으로 취미 생활을 펼치고 싶은 이들이 프로에 손을 뻗칠 것이다. 이 커다란 디스플레이는 때론 스케치북이 되고, 때론 악기가 되며, 때론 영상 편집 기기가 되니까. 앞서 한번 말했지만, 아이패드 프로는 재미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중요한 요소다. 새로 나온 제품을 향해 ‘필요’와 ‘생산성’만을 논하는 건 이제 의미 없는 시대다. 우리는 이미 필요한 기기를 모두 가지고 있고, 고도의 생산성을 추구하는 기기는 사무실에 놓여있다.

내 옷장에는 이미 여러 벌의 코트가 있다. 그러나 나는 매년 겨울이 될 때마다 “올 겨울에 입을 코트가 필요해”라며 징징댄다. 이건 정말 새 코트가 없으면 얼어 죽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새로운 코트가 내 외출을 더 즐겁게 만들고, 나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뜻에서의 ‘필요’다. 질이 좋고 따뜻하며, 디자인이 아름다워야 하는 등 ‘성능’에 대한 조건은 당연히 갖춰야 할 것이고. 아이패드 프로도 마찬가지다.

긴 글이었다. 결론은 단순하다. 아이패드 프로는 PC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지만, 일부 영역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필요한 제품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성능 좋은 사치품이다. 가지고 싶은 마음에 더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다.

딱 그 표현이 걸맞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아이패드 프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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