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건설시장 불황에 '헙력업체'는 "죽을 맛"

입력 2007-05-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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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IMF때 수준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대로 가단간 오래 못버틸 것 같아요"

"그나마 당장은 일이 있죠,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는 9월 이후에는 회사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분양을 준비하는 한 분양대행사 직원의 말이다.

분양 대행사인 D사는 한때 "잘나가던" 대행사였다. 오랫동안 회사를 유지한 덕분에 고객 명단도 확보된 상태에다 실력있는 대행사로 알려져 시공사들도 어려운 분양이 있을 때마다 '모셔'가는 지명도 높은 회사였다. 지난 2000년대 초반는 일부러 분양 수수료가 적은 아파트 분양은 아예 맡지도 않았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려도 수수료가 높은 상가 분양만 맡았을 정도로 자신감이 뚜렷했다.

한데 이 회사는 최근 자신감을 잃었다. 분양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인기 브랜드 아파트를 맡고 있음에도 분양실적은 영 시원치 않다. 부동산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어 정작 모델하우스에는 관람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도 청약과 계약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일이 일쑤기 때문이다.

"시장의 경쟁자가 많아진 것도 문젭니다" 이 회사 사장 K씨의 말이다. 오랫 동안 회사에서 몸 담아왔던 인력들이 모두 독립해 경쟁자가 돼 있는 상태에서 일꺼리를 맡기도 어렵고 분양이 안되는 만큼 건설업체도 분양 수수료에 갈수록 인색해지고 있어 더이상 회사를 꾸려나갈 자신감 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게 K사장의 말이다.

건설업체의 감기가 협력업체의 폐렴으로 번지고 있다. 2005년 후반기 부터 지속된 분양시장 침체로 시행사와 분양대행사, 그리고 설계업체 등 이른바 건설 '협력업체'의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건설경기 부진을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선봉대'인 디벨로퍼, 즉 시행사다.

시행사 L업체. 이 회사는 택지지구를 매입해서 시공사로 넘기는 일을 주로 한 회사다. 하지만 최근들어 공공택지는 공영개발로 하기로 한 다음부터 '전공'이 뚝 끊겼다. 지금껏 택지지구 아파트 사업만 했던 L업체로선 공영개발 방침은 곧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었던 것. L업체 관계자는 "다른 회사처럼 도심지 땅을 매입해 주상복합 사업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간 해오던 일도 아닌데 그 방면 전문가들과 상대가 될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토했다.

하지만 주상복합 전문 개발회사도 속이 편할리는 없다. 9월 실시된 분양가 상한제와 원가 공개로 인해 과거와 같은 대박의 꿈은 사라지게 된 것은 물론 더이상 사업을 실시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주상복합과 오피스텔만 10곳 가까이 시행했던 K업체 관계자는 "집값이 오른다고 부동산시장이 활황이 아니다"며 "2005년부터 사업수주가 거의 안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06년부터 단 세 건의 사업 제안을 받았고 그나마 세 건 모두 자체 사업성 평가에서 탈락해 아무런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2005년 말 분양한 주상복합이 입주하는 올 10월부터는 말 그대로 실업상태가 된다.

주택사업이 런칭되면 그 다음부터 나서는 협력업체는 설계회사다. 건축사 사무소로 이뤄진 이들 설계회사 역시 건설 경기 불황의 폐해를 톡톡히 겪고 있다. 용인 동백지구와 동탄신도시 등 주로 택지지구 아파트 내부 설계를 수주해왔던 J건축사 사무소 관계자는 "회사가 비교적 규모가 있어 그간 수주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이제는 일거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면서 "이제 아파트는 지양하고 '철밥통'인 공공공사 수주나 노려야할 처지"라고 말했다.

건설업 협력업체들은 당장 느끼는 시장 침체보다 앞으로 변할 시장 환경에 더욱 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참여정부 들어 정부와 주공, 토공 등 공공기관이 모든 건설시장을 '독식'해 버릴 듯한 시장 환경이 고민이다. 정부가 임대주택 사업을 자체 펀드까지 조성해서 할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공기업인 토지공사가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도 뛰어들 태세를 갖추면서 이들 '개미군단'의 우려는 우려 수준을 넘어 공포 단계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 소규모 시행사 사장은 "강철밥통을 내세워 우수 인재는 싹쓸이 한 후 국가가 대주는 혈세(血稅) 자본을 바탕으로 덤벼드는 공기업과 어찌 승부가 되겠습니까?"라고 불만을 토로하며 "자본주의시장에서 경쟁을 없애고 모든 민간 회사를 공기업의 하청업체로 만들어버리면 세계에서도 수준급으로 꼽히는 국내 주택 건설시장의 위축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시행사와 분양 대행사와 같은 업체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파트 '유통시장'의 중간 상인 격인 이들의 존재로 분양가가 올라가고 이에 맞춰 기존 주택가격도 올라가는 현상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들도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완전 무결한, 이른바 '최적시장'은 경제학 원론에서나 나오는 것입니다. 정부가 공영개발을 실시하면 과연 무결한 건설시장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 분양대행사 사장은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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