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자본시장 60년]‘증권구락부’ 만든 송대순, 주식시장 불모지에 씨앗 심어

입력 2016-01-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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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시장의 거목들…거래소 개장前 1949년 국내 1호 증권사 문열어

‘모든 역사는 인물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된 한국의 자본시장의 역사 또한 국내 자본시장의 태동과 발전을 이끌었던 거목(巨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의 활약상은 한국 경제 발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다. 금융투자업계 여러 관계자의 의견을 모아 자본시장을 움직인 인물들을 꼽아 봤다.

◇한국 자본시장의 산파 ‘증권구락부’와 송대순 전 회장 = 근대적 의미의 증권시장은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의 개장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정부의 인증을 받은 첫 증권사는 그보다 앞선 1949년에 생겼다. 고(故) 송대순 대한증권업협회(현 한국금융투자협회) 초대 회장이 만든 대한증권(현 교보증권)이다. 당시 대한증권은 우리나라에 증권거래소가 생기기도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증권사인 동시에 거래소의 역할도 했다.

일제시절 증권업을 배운 송 전 회장은 당시에도 증권업계의 원로였다. 한국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하려면 증권시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조준호, 김광준, 김주묵 등 초기 증권인 40명을 모아 ‘증권구락부’를 발족했다. 증권구락부는 이후 대한증권업협회로 정식 출범해 한국 자본시장 토대를 닦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증권업협회 초대 회장은 협회 발족에 공헌이 가장 컸던 송 전 회장이 맡았다. 지금도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로비에는 그의 흉상이 있다.

◇사채동결기업공개촉진 단행…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 =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금융선진국에서는 민간에서 자본시장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됐다. 반면 우리 자본시장의 본격적인 발전 시기는 경제관료의 활약상을 떼 놓고 설명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자본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경제관료로 단연 고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를 꼽는다.

1970년대 정부는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고자 투자 재원이 필요했다. 증권시장의 육성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중요한 열쇠였다. 1972년 8월, 남 전 경제부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사채동결 조치’를 발표됐다. 사채 동결로 갈 곳을 잃은 유동자금이 대거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고 고리사채에서 풀려난 기업들은 재무구조가 급격히 개선됐다.

몇 달 뒤인 12월 기업공개촉진법이 발표됐다. 일정 조건의 법인에 대해 기업공개(IPO)를 명령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기업 공개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자 1974년에는 정부는 ‘529 조치’를 단행했다. 공개를 꺼리는 기업이 여신상 불이익과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도록 하는 서슬 퍼런 정책이었다. 등 떠밀린 기업들이 속속 기업공개에 나섰다. 그 결과 1968년 34개에 불과했던 상장사가 1976년 274개로 늘어나는 등 주식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증권시장 대중화’, 전산시스템 구축의 주역들 = 초창기 주식 거래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증권사 지점에 주문을 내면 본점을 거쳐 거래소로 전달하고, 거래소에서는 계약을 체결한 뒤 이후 다시 증권사 본점과 지점을 경유해 계약 체결 정보를 전했다. 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 장소에 상관없이 실시간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증권업무의 전산화는 시장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당시 재무부 장관)와 성기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개발센터 소장은 주식시장 전산화의 주역이다. 전산화 검토는 강 전 장관이 경제기획원 예산총괄과장, 성 전 소장이 구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산실 실장이었을 때부터 시작해 준비에만 10년 걸린 작업이었다.

증권시장 전산화를 위한 본격적인 실무 작업은 1977년 한국증권전산주식회사(현 코스콤)가 설립되면서다. 당시 증권거래소 이사장이던 이두희씨는 한국증권전산의 초대 사장도 맡아 증권시장의 전산화를 앞당겼다. 이두희 사장은 취임 후 증권업의 전산화에 역량을 쏟았다. 증권사 지점 객장의 전광판이 속속 설치돼 주식거래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파생상품펀드 시장 개척자들… 홍인기이익치박현주 = 어느 정도 원숙기에 접어든 시장의 과제는 다양화국제화였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인물은 홍인기 전 증권거래소 이사장이다. 홍 전 이사장이 1993년 최초로 선물, 옵션 시장을 개설해 자본시장의 외연을 키운 것이다. 이때 기반을 닦은 한국의 파생상품시장은 훗날 세계 1위 시장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관치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해진 반면 민간의 활약상이 돋보인다. 1999년 ‘바이 코리아(Buy Korea) 펀드’ 열풍을 만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국내 최초로 뮤추얼펀드를 도입해 주식시장에 간접투자 열풍을 만든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등이 등장하면서다. 펀드에 투자된 자금은 주식시장으로 들어갔다. 외환위기로 빈사 상태에 빠졌던 주식시장은 펀드 열풍에 따른 자금 유입에 힘입어 다시 크게 활성화될 수 있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박현주 신화’는 외국의 거대 투자회사들도 박 회장의 투자 전략을 벤치마킹할 만큼 한국 금융의 자존심이자 상징이었다”면서 “이익치 전 회장 역시 주가조작 논란에도 한국경제에 숨통을 틔워줬던 인물임은 분명하다. 요즘처럼 활력을 잃은 증시를 보고 있다가 보면 차라리 이 전 회장이 그리워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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