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2016] 외교정책 신중하면서도 기민하게, 결단과 균형이 조화되게

입력 2016-01-04 11:08 수정 2016-01-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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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외교: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주변의 국제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 외교가 커다란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외교 환경의 변화는 신중하면서도 기민한, 그리고 결단성 있으면서도 균형 잡힌 대응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협력과 경쟁이 혼재하는 가운데 갈등적 요소가 더 많은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전통적인 상호 견제를 떨쳐버리지 못하면서 표면적으론 새로운 밀월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역시 역사 및 영토 문제 등으로 비롯된 불가피한 갈등 요인을 안고 있으면서도 상호간의 경제적 의존관계를 의식하여 마지못해 협력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북한의 핵 개발, 김정은의 친중(親中) 세력 숙청 등으로 야기되는 갈등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연기하는 등 중국의 비위를 맞춰주는 가운데 중국은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경제 지원 및 관계 유지로 북한의 생존 전략에 부응해주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시리아 등지에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으면서도 유가 하락과 경제 제재 등에서 오는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대북한 경협 카드를 활용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하나 경제적 약체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화해와 협조가 긴요함에도 불구하고 상이한 역사 인식과 일본의 우경화로 인해 자칫 관계 개선의 기회를 잃을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일까? 첫째, 한국에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안보 협력 관계를 심화시키는 한편 중국과의 우호 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일본과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국의 대중국 경사(傾斜)론’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FTA 등을 통한 경제 관계 확대 및 활성화에 주력하는 한편 중국이 한미 안보관계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북한의 핵 문제 해결, 도발 억제, 통일 문제 등에 있어서 협조를 이끌어 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역사 문제나 일본의 군사 대국화가 한일 협력에 부정적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북한의 도발 및 위협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북한 사회가 급변사태 없이 변화하고 개방되도록 하는 방안과 그 방향으로 유도해 나갈 방책을 모색하고, 궁극적으로 북한 내에서 통일 세력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언제 올지 모르는 통일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및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국들의 한국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총론적 대응을 구체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어떻게 강구하느냐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사드(THAAD)와 같은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는 데 반대하고 미국이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팽창 정책에 대해 좀 더 강력히 항의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소극적 대응보다는 우리의 입장을 확실히 정리하고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 그 논리로 양국을 설득해 우리의 입장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에 대해서는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냉철하고 실용적인 대응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일본과는 갈등 요인도 있지만 안보, 경제 및 외교 면에서 서로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본은 지난해 말 군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의 책임을 명백하게 인정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사죄할 것을 약속함에 따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실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냉철하게 계산하여 가능한 사안은 해결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체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적시에 가입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창립 멤버가 되지 못한 것은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아쉬운 일이다. TPP는 경제협력체인 동시에 전략적 제휴의 성격도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미국 및 일본 등 주도국들을 설득하여 가능한 한 빨리 창립 회원국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을 안겨주는 것은 예측 불허인 북한이라고 하겠다. 북한은 중국 및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을 위협하는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직되고 도발적인 태도로 한국뿐 아니라 자국의 유일한 지원국인 중국에도 배타적이고 자폭(自爆)을 각오하는 자세로 대항하고 있다.

북한이 크게 선전하고 성과를 기대했던 모란봉악단의 지난해 12월 12일 베이징 공연을 몇 시간 전에 취소하고 귀국 조치시킨 사건은 북한의 사고방식과 행태의 패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을 알면서도 공연단을 철수시킨 것은 중국뿐 아니라 제3국에도 북한이 자존심 수호를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다는 점을 주지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은 당장 외교적으로 큰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의 압력에 굽히지 않는 ‘본때’를 상대방(중국)에게 과시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북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우리 정부가 통일을 강조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통일을 강조할수록 그 의도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은 더 커질 것이며,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할수록 핵?경제 병진정책에 활용하려는 북한의 의지만 더 강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대화를 위한 대화’보다는 남북 간 실질 관계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동시에 통일이 독일처럼 일거에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점진적이고 실질적인 협력과 통합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장마당 경제’가 확대되도록 유도하는 한편, 한반도 통일이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임을 납득시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간에, 또 우리와 주변국 간에 활발한 의사소통과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 북한과 관련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면이 많음은 사실이나 최소한 북한의 비핵화가 그들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통일을 지지하게 만드는 가장 유용한 설득 논리(selling point)가 될 것이다.

외교는 바둑이나 장기판과도 같다. 한 군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판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위에 설명한 사안 간의 상관관계와 국가 간의 유기적 상호관계를 인식하여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외교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경제와 국력 면에서 20세기 초와 같은 국제적 ‘낙오자’가 아니다. G20의 주요 멤버로서 세계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중견국(middle power)이다. 우리의 자산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잘 활용하여 능동적이고 실용적인 외교정책을 정부가 구상하고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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