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중국발 쇼크]사우디·중국발 외환위기 촉발되나…새해 벽두부터 ‘블랙스완’ 날갯짓

입력 2016-01-04 15:04 수정 2016-01-0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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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세계의 공장 중국의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블랙스완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다.

중동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새해 벽두 시아파 지도자를 포함해 47명을 집단 처형하고 이란과의 외교관계마저 단절하면서 국제 사회에 지정학적 리스크를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다 중국은 4일 발표된 제조업 지표가 부진을 보이면서 경기 침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날 중국 증시는 6.88% 폭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후 증시를 아예 조기 폐장했다. 시장에서는 새해 벽두부터 불거진 중동 및 중국발 쇼크를 둘러싸고 올해 세계 경제에 불길한 재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란 시민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유력인사 집단 처형에 분노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 시민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유력인사 집단 처형에 분노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같은 전조는 일찍부터 있었다. 사우디는 지난달 28일 2016년 예산을 발표했다. 석유 관련 수입이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사우디는 국제유가 침체로 올해 재정 적자액이 3270억 리얄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적자를 메꾸기 위한 국채 발행과 대외 자산 매각 외 부가가치세 도입 등 허리띠를 바짝 졸라메기로 했다. 앞서 사우디는 작년에 2007년 이후 처음으로 국채 40억 달러어치를 발행, 총 27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발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의 올해 재정 적자는 979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11월 말, 사우디가 달러와의 페그제를 폐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우디는 리얄을 달러당 3.75리얄로 고정하고 있는데 이를 폐지해 리얄 가치를 낮춘다는 내용이었다. 일각에선 근거없는 내용이라고 일축했으나 현재 사우디의 상황을 보면 설득력이 없는 내용도 아니었다. 통화 가치를 낮추면 원유 수출을 통한 사실상의 수입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작년 말 시점에 사우디의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필리핀을 웃돌았다. CDS는 기업이나 정부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경우 빌려준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한 일종의 ‘파산보험’이다. 보험료 격인 프리미엄은 기업이나 정부의 재정이 위험할 수록 높아진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사우디의 주머니 사정이 필리핀보다 더 좋지 않다고 본 것이다.

사우디를 이처럼 몰고간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우디를 강타하고 있는 국제유가 폭락이다. 2014년 여름 배럴당 100달러 선이던 WTI(서부 텍사스산 중질유) 가격은 2015년 말에는 한때 30달러 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재정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가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이다. 거액의 흑자를 구가하던 경상 수지는 2015년 들어 적자로 전락했다. 사우디는 전기·수도, 의료, 교육 등을 무상으로 제공, 재정 남용에다 군사 예산을 확대하고 있었던 만큼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오일머니로 윤택한 생활을 누려온 사우디가 재정과 경상 수지의 ‘쌍둥이 적자’ 신세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에서 재정 남용을 중단하고 군사 예산을 줄여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중세와 같은 왕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당근과 채찍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국부펀드인 사우디아라비아 통화청(SAMA)에 쌓아 놓은 외화보유액을 허물기로 했다. SAMA가 보유한 외화 금융 자산은 부채를 뺀 순자산이 2014년 8월말 2조7600억 리얄(약 7360억 달러)에서 2015년 10월 말에는 2조4000억 리얄로 1년 2개월 만에 13%나 감소했다.

사우디가 섣불리 통화 가치를 절하하지 못하는 이유는 있다. 리얄 가치를 절하시키면 사우디의 수출을 통한 수입은 늘어난다. 루블 약세를 방치해 원유 및 가스 수출을 통한 수입을 늘리고 있는 러시아와 같은 이치다.

하지만 사우디가 블라디미르 푸틴과 같이 통화 약세 정책을 도입하지 못하는 건 야채를 비롯해 식품, 가전, 자동차, 기계류, 화학 제품 등 자국 경제와 국민 생활을 가능케하는 대부분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 가치를 낮추면 수입 가격이 상승해, 선심성 정책으로 억제해온 국민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5년 가을, 중동판 지역경제전망에서 저유가 기조의 장기화로 인한 쌍둥이 적자 탓에 사우디는 앞으로 5년 안에 준비자산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 왕정 체제의 위기설도 피어오르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건국 시기는 1930년대로 중동 세계의 잣대로 보면 그다지 오래된 것이 아니다. 또한 인터넷 보급이 일반화한 21세기에 왕정 체제가 정통성을 이어가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여기다 ‘아랍의 봄’ 기운이 사우디까지 밀려와 이슬람국가(IS)가 사우디 왕권을 빼앗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달러/위안 환율 추이. 야후파이낸스
▲달러/위안 환율 추이. 야후파이낸스

◇이런 가운데 세계 경제의 한 축인 중국은 고성장 시대의 막을 내리고 중고속 성장 시대를 사실상 선언했다. 이런 과도기에 일어나는 부작용은 현재 시진핑 정권이 해결해야할 최대 과제로 꼽힌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게 위안화 문제다. 중국은 위안화의 MF 특별인출권(SDR) 편입을 계기로 위안화의 국제화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며, 일련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년 12월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는 달러와 연동된 자국 통화를 위안화와 연동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금 납부 및 상거래 결제 시 위안화를 공식 통화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안화의 평가 절하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작년 8월 세계 금융시장은 중국증시 쇼크로 동반 하락했다. 이는 중국 인민은행의 급격한 위안화 평가 절하가 발단이 됐다. 그전까지 달러당 6.2위안대에 거래되던 위안화는 단번에 6.4위안대까지 가치가 떨어졌다.

중국 당국은 시장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했으나 경기 둔화와 수출이 감소하는 와중에 통화가 평가 절하됐기 때문에 수출 시장에서는 중국과 경쟁하는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패닉에 빠졌다.

여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작년 9월 유력했던 제로 금리 해제를 12월까지 연기한 것도 위안화 쇼크에 기름을 부었다. IMF에 따르면 당시 SDR 편입 결정에 악영향을 우려한 중국 당국은 위안화 약세를 막고자 필사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후 위안화는 10월 말에는 달러당 6.3위안대까지 회복했고, IMF가 위안화의 SDR 진출을 확정한 11월 30일까지 위안화는 진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인내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12월 들어 다시 위안화가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4일 위안화 가치는 역내 시장에서 2011년 4월 이후 최저치인 6.5032위안을 기록했다. 이는 전장의 6.4936위안보다 위안화 가치가 0.15%가량 절하된 것이다.

위안화 약세는 수출 부양 차원에서 중국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의 위안화 약세가 중국 당국의 조작이 아닌, 중국에서의 자본 유출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경기 부양책으로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금융을 완화하고 있지만 해외 자본 유출이 확대되면 자국 내 자금은 오히려 마를 수 밖에 없다.

경기 침체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것도 이같은 자금 유출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달러당 6.5위안 대인 위안화 가치가 더 떨어져 7위안 대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대로라면 위안화 가치 급락은 새로운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단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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