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경제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세계 교역량 감소, 주요국 통화정책의 비동조화를 비롯해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경제 위기감은 빠른 속도로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경제 변수 간 인과관계가 불분명해졌다며 전망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제주체들이 기존의 경제이론과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는 양상을 보이는가 하면, 경제현상의 불가측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에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해졌다. 정책금리(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통화신용정책과 관련해 10개 이상의 사안에 대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만큼 책임이 막중해진 것이다.
주목할 점은 한은의 중요 의사결정권을 가진 금통위원에 정작 책임을 요구하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한은법 제25조에 금통위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책임 조항이 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한국은행에 손해를 끼친 때에는 당해 회의에 출석한 모든 위원은 한국은행에 연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 항목이 한은이 지난 1950년 설립된 이후 한 번도 적용된 적 없는 사문화된 조항이라는 것이다. 특히 금통위 손해배상 조항은 상법 제339조에서 이사를 대상으로 적용하고 있는 손해배상 조항을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한은을 설립했을 당시 15억원을 출자했는데, 이때 주식회사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이유로 상법에 있는 책임 조항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은은 1962년 1차 개정 당시 정부의 출자 및 자본금 없이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를 담은 무자본특수법인으로 전환했다. 결국 현재 한은이 무자본특수법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60여년 전에 생긴 금통위 손해배상 조항은 적절하지 않은 규정인 셈이다.
기획재정부에서도 금통위 손해배상책임 조항에 대한 정확한 법령 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은법 해설서에 따르면 금통위 손해배상은 현실적으로 발생한 재산적 손해와 중앙은행의 명예를 훼손한 비재산적 손해로 구분한다”며 “그러나 어떤 행위가 고의·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 역시 “이 조항은 한은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 조항”이라며 “정책 결정을 내릴 때 책임감을 가지고, 외부 압력을 받더라도 결정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의 경고성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금통위 손해배상 조항은 삭제하고 금통위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실명이 기재되는 속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통위원 임기 중이 아니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속기록을 공개한다는 원칙이 생기면 금통위가 더욱 신중해질 것이란 주장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일본은행(BOJ)은 각각 5년, 10년 주기로 통화정책 결정에 대한 속기록을 공개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책의사결정으로 손해를 봤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상법에 있는 손해배상 조항과 비교한다면) 기업의 이사와 통화정책을 내리는 금통위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삭제하는 게 맞다”며 “정책의사결정에 손해의 개념을 적용하면 복지부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대한 평가가 확실히 이뤄질 수 있도록 속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 역시 “속기록을 공개해 금통위가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성 교수는 연봉 등 금통위원에 대한 처우가 과도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통위원에 대한 초점이 정책결정보다 대우에 쏠리는 경우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금통위의 연봉은 2억6700만원(2014년 기준)에 달한다. 여기에 급여성 복리후생비로 연간 70만원을 별도로 지급받는다.
성 교수는 “금통위원의 연봉이 너무 많으면 금통위 역할이 아닌 그 대우에만 관심이 쏠릴 수 있다”며 “전문성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금통위원을 맡는 환경이 조성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