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칼럼] 경영의 불확실성을 이기는 원칙, 윤리경영

입력 2016-01-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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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권 한국SR전략연구소(코스리) 부소장

2016년이 시작되고 아직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두세 달은 지난 것 같은 피로감이 든다. 중국 증시에서 출발한 악재와 저유가, 환율의 널뛰기와 테러, 북핵 같은 대외적인 조건들로 인해 우리 경제는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나마 예측이 되는 것이 있다면, 이제 저성장은 우리 경제의 숙명이라는 사실 정도다. 기업의 경영 환경 역시 밝지 않다. 저성장 시대의 도래가 낮은 수준의 경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은 파이를 두고 벌어지는 기업 간의 경쟁은 더욱 격해질 것이다. 특히 위기를 기회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 기업은 더욱 공격적인 형태의 경영전략을 구사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에 앞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윤리 경영이다.

전통적으로 팽창 중심의 전략이 경영의 화두로 떠오를 때 가장 먼저 위협받는 것이 기업의 윤리, 즉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업체 간 경쟁이 가속화되면 비윤리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꼭 결과물을 성취해야 한다는 의식이 조직과 조직원에게 암묵적으로 파고들어 번진다. 최고경영자가 대외적으로 윤리경영을 천명하더라도, 기업의 생리란 눈앞의 성과를 마다하지 않는 법이다. 뇌물을 써서라도 계약을 따내려는 욕망, 부하의 잘못된 선택을 눈감고 싶은 욕망, 사내윤리강령을 만들었으니 이를 피해가건 지키건 책임은 당사자들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경영진의 보신주의가 윤리경영의 붕괴를 초래하는 틈새가 된다.

윤리경영이 무너지면 기업의 가치가 무너진다. 기업의 고객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는 더 이상 윤리경영을 저버린 기업을 신뢰하지 않는다. ‘얻기는 힘들어도, 잃기는 쉬운’ 신뢰는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자본의 기초 자산이다. 이러한 신뢰를 지키는 것,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170년 전에 설립된 독일의 전자기업 지멘스는 부패에 노출되기 쉬운 입찰 담당 임원들에게 LOA(Limits of Authority)에 선서하도록 한다. LOA는 네 가지 질문이다. 지멘스에 득이 되는가, 지멘스의 핵심가치 및 내 가치에 부합하는가, 적법한가, 내가 기꺼이 책임질 일인가. 단순히 선서만이 아니다. 지멘스는 프로젝트의 입찰과 수주단계에서 반부패위험도를 평가해 수많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국가에서의 입찰과 조세회피지역, 국제기준 투명성 등급이 낮은 국가에 대한 송금은 철저하게 점검한다. 눈앞의 이익을 회피하는 조치일 수도 있지만, 지멘스는 이를 따른다. 지멘스는 이러한 조치를 포함한 전사적인 윤리경영의 통합체계를 구축했다.

물론 지멘스가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윤리경영에 나섰던 것은 아니다. 2006년 11월, 지멘스는 최악의 부패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4억2000만 유로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탈리아, 푸에르토리코, 그리스, 미국 등의 공무원과 고객사의 구매담당자에게 제공했음이 적발된 것이다. 2007년 1월엔 ABB, 알스톰, 후지, 미쓰비스 등 다국적 기업 11개와 유럽 전기시장에서 카르텔을 형성해 가격조작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유럽위원회로부터 3억960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주가가 폭락했고 경영진이 교체되었다.

그러나 이런 스캔들은 지멘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윤리경영을 결단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스캔들 발발 직후 즉각적이고 강도 높은 대응조치를 내놓았고, 그후 준법윤리경영이 정착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했다. 예방, 발견, 대응으로 구성된 윤리경영 제도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멘스가 일을 하는 방식이 되었다.

2009년부터는 지멘스를 넘어 전 세계에 윤리경영의 촉진을 위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독일 지멘스의 반부패 증진 프로젝트인 지멘스청렴이니셔티브(Siemens Integrity Initiative)는 2015년부터 한국의 준법윤리경영 민관협력 프로젝트인 페어플레이어클럽을 통해 한국 기업들의 윤리경영 정착과 심화를 지원하고 있다. 페어플레이어클럽을 주최하고 있는 UNGC(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에는 3년에 걸쳐 각종 산업협회, 지자체, 지역상의, 주한외국대사관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러한 윤리경영을 통해 지멘스가 얻은 것은 파트너, 투자자, 고객, 종업원으로부터의 신뢰다. 이 대목에서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기업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스캔들이 터지면 대표이사와 임원진이 미디어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 어떤 대책을 세워서 실행했는지 알 길이 없는 몇몇 기업의 행태도 떠오른다. 물론 신뢰가 없어도 ‘장사는 할 수 있다’. 스캔들에 휩싸여도 장사는 된다. 2015년 최대 스캔들의 주인공인 폭스바겐이 한국시장에선 승승장구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언론보도에서 사라지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면 스캔들로 입었던 손해는 회복된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에겐 사랑받지 못하고, 파트너에겐 존경받지 못하고, 고객에겐 조롱을 사고, 투자자에겐 위험덩어리로 인식될 것이다. 손해는 회피할 수 있지만, 기업의 가치는 침몰한다.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윤리경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전략적인 시기는 언제일까? 답은 ‘지금’이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자본의 영향력이 크고, 글로벌 규제들이 다각화되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금이, 기업의 원칙을 세울 때다. “전 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우리 기업의 윤리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모든 비즈니스를 적법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사내 이해관계자에게 심어주는 것. “어떤 상품이건 이 회사가 내놓은 제품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소비자에게 주는 것. 이보다 더 한 경쟁력은 없다.

고대권 한국SR전략연구소(코스리)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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