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기사와 우리를 바라보는 삐딱한 댓글로 인해 이미 눈치챈 독자도 있겠지만 기어박스의 업무용 PC는 모두 아이맥이다. 들어온 연차와 짬밥에 따라 약간씩 성능의 차이가 있지만.
물론 편집장인 내가 제일 좋은 걸 쓰고 있다. 맥 미니 2.3GHz i7, 16GB DDR3, 250GB SSD, 그리고 썬더볼트 디스플레이 27형 사양이다. ‘안물안궁’이겠지만 이런 거 적어주면 좋아한다는 거 내가 잘 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쭉 맥을 사용해온 것엔 아이폰의 영향이 컸다. 안드로이드 계열의 스마트폰을 썼다면 아이맥을 기어박스 업무용 PC로 고를 일이 없었을 테고.
지금 내 앞에는 최신형 아이맥 5K가 있다. 물론 기사는 앞서 밝힌 맥 미니로 작성 중이다. 책상에 27형 썬더볼트 디스플레이와 27형 5K 아이맥을 나란히 두고 있다니. 이렇게 호사스러울 때가.
이미 27형 디스플레이를 쓰고 있기 때문에 큰 괴리감은 없다. 대신 아이패드 프로 디스플레이를 여러 장 붙여 놓은 것처럼 널찍한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살짝 당황스러울 뿐이다. 이 녀석과 눈이 맞는 순간, 집에 있는 15인치 맥북 프로 레티나 모델이 기억나지 않는다. 보는 순간 눈을 버려놨으니 다운 그레이드 이미 언감생심, 괜찮다. 어차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PC처럼 볼트를 풀고 마음대로 뜯어 볼 수가 없으니 제품 박스에 적힌 스펙표에 의지해 사양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런 건 원래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일단 믿고 보는거다.
눈물이 날 정도로 화면을 빤히 쳐다봐도 픽셀을 찾기 힘든 또렷한 27형 16:9 와이드스크린. LED 백라이트 방식으로 구현한 레티나 5K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경화면인 엘캐피탄이 웅장하게 느껴질 정도로. 해상도 5120×2880. 주변광센서를 달아 환경에 따라 백라이트 밝기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이번 신형 모델은 21.5형에서도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지원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로써 애플은 맥북부터 아이맥까지 대부분의 맥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모델을 내놓게 됐다. 저렴이 맥북 에어 시리즈는 아직이다.
화면 크기 빼곤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속은 천차만별이다. 일단 27형은 인텔의 6세대 프로세서인 스카이레이크가 들어있다. 3.2GHz 쿼드코어로 터보부스트 모드에서 3.6GHz로 돌아간다. 기본 메모리는 8GB DDR3, 최대 32GB까지 확장 가능하다.
원래 아이맥은 CPU, 그래픽코어 통합형 플랫폼을 쓰지만 이번엔 프로세서만 출시하는 바람에 AMD 라데온 R9 M390을 끼웠다고. 21.5형엔 5세대 브로드웰 프로세서와 아이리스 프로 그래픽 코어가 들어간다.
퓨전 드라이브는 애플이 꾸준히 밀고 있는 ‘저가형’ 저장 장치다. 기존 하드디스크와 SSD의 절묘한 조합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저장 공간이 턱없이 줄어들어서다.
기존에는 무려 128GB나 할당하던 SSD 공간을 24GB로 줄였다. 물론 가격은 더 저렴해졌다. 대신 성능도 낮아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운영체제는 설치할 수 있어도 응용프로그램까지 24GB 공간에 담기엔 턱없이 부족할 테니까. 물론 고성능에 목마른 사람은 기존 128GB SSD를 품은 2, 3TB 퓨전 드라이브로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SSD로 바꾸면 된다. 물론 추가되는 비용은 소비자의 몫이다.
그런데 참 애플은 포장하는 능력이 좋다. 높은 가격이 문제라 저렴하게 만들기 위해서란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목사님이나 스님이 하는 죄 짓지 말고 베풀고 살라는 말처럼, 이해는 되나 몸과 마음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다.
다시 오늘의 주인공인 27형(인치라고 쓰고 싶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짜장면보다는 자장면이라 쓰는 게 아직 편한 세대라 그러니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 5K 디스플레이 이야기로 돌아가자.
애플은 왜 4K도 8K도 아닌 5K를 선택했을까. 일단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만 디스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를 온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원주율처럼 귀에 못이 박혀라 들어왔던 1920×1080 풀HD의 해상도다. 여기에 각각 2를 곱한 해상도가 바로 UHD TV 규격. 우리가 흔히 말하는 4K 해상도다. 여기서 애플이 굳이 5K를 선택한 이유가 드러나게 된다. 재생만 하는 상황이라면 4K만으로도 충분하다.
디지털 영화 제작 기반에선 UHD 해상도보다 높은 해상도를 요구한다. 4096×2304는 대부분의 4K 프로덕션에서 사용하는 카메라인 the Red One의 기본 해상도다. 4K 디스플레이로 제대로 된 편집을 할 수 없는 이유다.
색상 처리 기술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애플의 모든 기기는 S-RGB가 기본이다. 그런데 촬영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미 기존 디스플레이 장치가 지닌 색재현 영역을 초월한 상태라고. 편집 하드웨어와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애플은 이번 모델부터 S-RGB 대신 P3라는 규격을 적용했다. 가장 큰 특징은 극단적인 채도 변화다. 녹색은 황색, 붉은색은 노란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랜지색에선 평소 볼 수 없던 형광색 기운이 감돈다. 25% 정도 늘어난 색상 표현 영역은 보다 실제와 가까운 영상을 재현하는 데 오롯이 쓰인다. 어차피 편집을 위한 아이맥이니 최종 작업물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면 서로 나쁠 게 없는 일이다.
27인치, 아니 27형 아이맥 5K의 장점은 또 있다. 일단 편집 화면인 파이널컷 X 화면을 보자. 프리뷰 화면이 4K로 나온다. 애플은 이걸 네이티브 4K라고 부르더라.
21형에선 화면 크기로 인한 약간의 패널티가 있다. 최대 4096×2304 해상도를 지원하는 만큼 전체화면으로 전환을 해야만 완전한 4K 화면을 볼 수 있다. 프리뷰 화면에선 조금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로썬 27형과 21.5형의 차이는 아이폰 6S광고 카피처럼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전부’다.
지금까지 감동하며 쓰고 있는 애플 매직 키보드+애플 매직 마우스2 이야기 역시 안 할 수 없다. 트랙패드 마니아인 난 트랙패드2까지 책상에 두고 지금도 상당히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하고 있다.
액세서리는 유니바디 타입으로 만든다.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을 만드는 공통적인 생산 방식이다. 배터리를 수납하던 공간이 없어져 기존보다 훨씬 바닥에 밀착되는 대신 마우스 패드처럼 디자인이 밋밋해졌다는 게 단점이다. 30% 정도 터치 영역이 늘어났고 완전 충전까지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실제로는 배터리 잔량이 어느 정도 남았을 때부터 메시지를 보내니까 점심 시간에 충전해도 충분하더라.
적어도 터치패드 디자인은 기존이 좋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환경을 위해 AA 배터리와는 이제 작별을 고할 때(time to say goodbye)가 됐다고 얘기한다. 역시 애플은 포장을 잘한다.
물론 애증의 AA 배터리를 리튬이온 방식으로 바꾸면서 생긴 장점도 있다. 배터리를 수납하던 배럴이 없어져 크기는 10% 줄었고 대신 키 사이즈는 커졌다. 가위식으로 키 접점 센서가 바뀌어 키 피치가 2mm에서 1mm로 줄었다는 것도 기존과 다른 점이다. 키보드를 강하게 타격하는 키보드 워리어(포털에 악플 다는 사람이 아니라 키보드가 부서져라 치는 사람 얘기다)에겐 슬픈 소식이다.
블루투스 페어링이 익숙지 않은 사람은 라이트닝 케이블에 연결하는 것만으로 페어링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 충전과 페어링이 함께 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맥에 연결해야 한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애플의 새로운 입력 장치에 대한 자세한 리뷰는 ‘이 기사’를 참조할 것.
애플의 PC라인업에서는 맥북 시리즈의 판매량이 단연 높지만 아이맥의 판매 역시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타 제조사의 PC처럼 판매량이 급감하는 건 아니란 얘길 하고 싶었나 보다.
에디터 생각도 그렇다. 아이맥은 굳이 생산성, 성능, 용도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가만히 둬도 무방할 만큼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 PC가 판매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과 다른 그래프가 나오는 것 역시 바로 이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맥에 윈도우를 깔아 쓰는 사용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아이맥의 판매 그래프를 뒷받침하는 증거다. 명분이 뭐든 상관 있으랴. 어차피 이런 제품은 need가 아니라 want로 인해 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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