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물건을 지켜라, 리락쿠마 라벨 프린터 사용기

입력 2016-01-2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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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리뷰는 기어박스의 살림꾼 P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볼펜이 자꾸만 사라져서 고통받고 있다. 하루는 날 잡고 전 직원의 책상을 모두 뒤졌다. 범인은 이 사무실 안에 있어! 하지만 범인 검거는 쉽지 않았다. 이거 내 볼펜 같은데? 하고 추궁해도 다들 원래 자기 거라며 범행 사실을 부인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다짐했다. 이제 더 이상 눈뜨고 펜을 도둑맞지 않겠다고. 자신이 가진 모든 펜에 이름을 쓰기로 한다. 처음엔 학창 시절처럼 종이에 이름을 쓰고 그 위를 투명 테이프로 붙이려고 했지만, 그런 일을 하기엔 이미 그는 너무 많이 커버렸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건 원하는 것을 쉽게 살 수 있다는 걸까? 그래서 샀다. 엡손이 선보인 LW-H200RK, 일명 리락쿠마 라벨 프린터. 그는 가슴속에 귀여운 곰돌이 한 마리를 품고 사는 남자였다.

먼저 디자인을 보자. 이건 프린터라기보다는 장난감에 가까운 모양새다. 노란 플라스틱 소재의 프린터 상단에는 리락쿠마 캐릭터가 ‘안녕?’하고 인사를 건넨다. 상단에는 작은 액정 LCD 창이 있어 작성한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가로 173mm, 세로 109mm, 높이 57mm로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라곤 할 수 없지만, 양손에 쥐면 딱 좋은 사이즈다.

문구를 작성하고 인쇄 버튼을 누르면 ‘지잉~’하는 전기면도기 소리를 내며 라벨을 출력한다. 얇은 테이프 위에 글자가 프린트되는 방식이다. 10년 전쯤 유행했던 다이모를 기억하시는지. 플라스틱 라벨 위에 글자를 양각으로 찍어내던 다이모 라벨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한글자 한글자 힘으로 글자를 찍어야 했던 다이모는 몇 개 뽑다 보면 엄지가 아려왔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말랑말랑한 고무 버튼을 눌러 문구를 작성하고, 인쇄 버튼까지 누르면 끝! 인쇄가 끝나면 우측의 가위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절단 버튼을 누르면 라벨이 잘린다.

배터리는 AA 알칼리 건전지 여섯 개가 들어간다. 카트리지와 건전지를 제외한 무게는 400g 정도지만, 건전지와 카트리지를 모두 넣으면 꽤 묵직한 편이다.

이 라벨 프린터의 가장 큰 특징은 리락쿠마다. 잠자기와 TV보기, 온천 그리고 음악 감상이 취미인 이 게으르고 귀여운 곰탱이가 라벨 프린터에 새 생명을 불어 넣었다. 단순히 문구만 프린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리락쿠마 이모티콘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더할 수 있다.

리락쿠마 캐릭터 이모티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물과 기호를 지원해 실용적이다. 서체는 4가지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영문에만 서체가 지원되어 한글 폰트는 조금 투박한 편이다. 라벨의 종류도 다양하다. 깔끔한 화이트 라벨부터, 리락쿠마가 그려져 있는 라벨까지 있어 리락쿠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뽐뿌를 불러일으킨다. 

가장 먼저 P가 그리도 간절히 원하던 펜에 이름표 달기부터 해보자. 라미 만년필, 누구나 한 개씩은 가지고 있어 헷갈리기 쉬운 모나미 볼펜 그리고 가위에 라벨을 붙였다. 마침 펜 모양 이모티콘이 있길래 넣어 봤다. 흠, 꽤 마음에 드는군.

다음은 즉석 사진에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정보를 더해봤다. 이런 건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까먹기 쉽다(사실 이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 생각해내느라 고생 좀 했다). 원래는 네임펜으로 적어두곤 했는데 이렇게 라벨로 붙여두니 훨씬 더 정돈되어 보인다.

아침마다 나에게 카페인을 공급하는 브라운 머그컵에도 붙였다. 원래도 귀여웠는데, 라벨까지 붙이니 더 귀엽다. 다음은 당이 부족할 때 숟가락으로 퍼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뒀던 누텔라에도 내 소유권을 주장해본다. 안 그래도 요즘 뚜껑을 열 때마다 이상하게 양이 줄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던 차였다. 이렇게 귀여운 문구를 써놨으니 이젠 아무도 건드리지 않겠지.

기어박스 사무실의 전등 스위치도 메이크 오버! 인쇄해서 붙이니 사람 손으로 쓴 것보다 훨씬 더 깔끔하니 보기에 좋더라.

마지막으로 제품 가격은 8만 9000원. 물건을 사면 일단 이름부터 쓰고 보는 사람에게 이 라벨 프린트는 분명 매력적인 제품이다. 게다가 아이콘부터 라벨까지 다양한 옵션이 있으니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상상력에 달렸다. 나는 원래 물건에 이름같은 거 쓰고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뽑고 붙이는 재미가 있으니 어느새 모든 물건에 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더라. 참 재미있는 기기다.

이 아이 덕택에 더 이상 P의 펜을 쓰고 돌려주지 않는 사람은 없어졌고, P는 고통에서 해방됐다. 이렇게 기어박스 사무실엔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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