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창작엔진 장착! 내비게이션 옵션! 달리자!

입력 2016-01-22 10:32 수정 2016-03-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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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한국뮤지컬산업연구소 소장·창작뮤지컬 프로듀서

1999년 2월 13일은 한국 영화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만든 날이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대명사 영화 ‘쉬리’를 잉태한 날, 당시로선 놀라운 기록인 600만명 관객 동원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뮤지컬 종사자들도 뮤지컬 시장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종종 ‘쉬리’를 예로 든다. 창작뮤지컬 중에 ‘쉬리’ 같은 작품만 나오면, 그 기점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이 라이선스 시장에서 창작 시장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지난해 충무아트홀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제작된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초연 성공에 이어 올해 공연도 흥행 가도를 달리는 중인데, 매출 100억원 달성을 코앞에 두고 있단다. 창작뮤지컬로는 이례적인 매출 기록에 조심스럽게 ‘프랑켄슈타인’이 뮤지컬의 ‘쉬리’일 수도 있다고 기대해 본다.

그런데 몇 가지 단서들이 그 소망 같은 가설에 힘을 실어 준다.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뮤지컬의 대형 블록버스터 흥행작이 또 한 편 탄생한 것이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뮤지컬 무대로 옮긴 창작뮤지컬 ‘아리랑’은 ‘그 방대하고 토속적인 소설이 과연 뮤지컬이 될 수 있을까’라는 기우를 정서적 교감으로 감싸안았고,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에 길든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이게 뮤지컬이야?’란 의문에 새로운 뮤지컬과의 조우로 답했다.

한 뮤지컬 전문잡지 신년호에서 뮤지컬 마니아 1만7010명은 지난해 최고의 창작뮤지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리랑’을 1위로 꼽았다. 숱한 평가와 시선의 엇갈림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관객들로부터 선택받은 것이다.

그리고 올해 한국 창작뮤지컬 시장의 지형도에 영향을 미칠 또 한 편의 대형 블록버스터 뮤지컬이 개막한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처럼 글로벌 시장 개척을 꿈꾸며 세계 보편적인 소재로 승부하는 창작뮤지컬 ‘마타하리’다. 두 편의 전작처럼 작품성과 흥행성에 다 성공한다면, 이 대형 블록버스터 3부작으로 한국 영화처럼 한국 창작뮤지컬 시장이 정말 도래할지도 모른다.

라이선스 뮤지컬이란 외국 사람이 공연에 대한 권리를 지니는 외국의 작품에 대해 극작, 작곡, 연출, 안무 그리고 무대를 비롯한 각 디자인에 대한 창작 사용료(로열티)를 지급하고 그 창작물을 한국에 가져와서 우리 제작 비용으로 외국 창작자들의 매뉴얼대로 한국 공연장에 구현하고 한국의 배우와 스태프에 의해 공연하는 행위다. 관객들이 공연 티켓을 많이 살수록 외국의 뮤지컬 종사자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뮤지컬 종사자들의 필연적인 미션이 잘 만든 창작뮤지컬 한 편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까지 공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20년 전 영화인들은 수입 배급 영화를 밀어내고 한국을 창작영화의 터전으로 탈바꿈시키자고 삭발 투혼으로 거리에 나와 여론에 호소했다. 영화처럼 사회적 영향력이나 관심도 없고 시장 규모가 영화와 비교도 안 되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종사자들은 그동안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을 통해 뮤지컬 제작의 노하우를 익히며 현실적 척박함을 신념으로 버텨내며 자갈밭을 일궈 왔다. 삭발 투혼 이상의 치열함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자갈밭에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한다. 지난해는 경기 침체와 내수 시장의 포화로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뮤지컬 시장 성장률이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대형 블록버스터 세 편의 개척적인 기록 경신, 다양한 창작뮤지컬 지원 제도와 함께 다양하게 좌충우돌 불꽃이 튀는 소극장 창작뮤지컬들의 약진, 창작뮤지컬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도가 오래도록 닦아온 아스팔트를 달리는 엔진이 되어 주리라 새해 벽두에 낙관해 본다.

거기에 더해서 ‘프랑켄슈타인’보다 한층 더 글로벌한 프로덕션으로 출발하는 ‘마타하리’. 신진 창작자들만 지원해 완성도와 제작 가능성이 부족했던 창작뮤지컬 지원 제도의 심사 선정에 과감히 참여한 중견 스타 연출가 이지나의 결과가 올해 한국 창작뮤지컬의 방향을 가리키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주기를 함께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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