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한국 금융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은행의 통폐합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중년들이 목숨을 끊는 일도 빈번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야말로 암울했던 시기다.
우리은행은 1999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쳐 탄생한 한빛은행의 후신이다. 2001년 한빛은행과 평화은행, 광주은행, 경남은행, 하나로종금이 통합돼 우리금융지주가 만들어졌다. 그해 12월 한빛은행과 평화은행이 분할 합병됐고, 이듬해 5월 우리은행으로 사명 변경됐다.
정부는 이들 부실 은행을 쪼개고 붙이는 과정에서 우리금융 정상화를 위해 예금보험공사의 채권을 발행, 12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정부는 2002년부터 블록세일(시간외 대량매매)과 공모 등을 통해 공적자금을 조금씩 회수했다. 정부 지분은 꾸준히 줄었지만, 예보의 우리은행 지분율은 아직 51.04%나 된다.
2010년 10월 이명박 정부 들어 첫 우리금융 매각공고가 난 후 지난해까지 네 차례 시도된 민영화는 모두 실패했다. 병행매각, 일괄매각, 분리매각 등 다양한 방식이 추진됐지만 모두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급기야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해 7월 예보가 가진 지분을 쪼개 파는 우리은행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중동지역 국부펀드가 우리은행 지분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등 매각 작업이 활기를 띠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착상태에 빠졌다.
우리은행 민영화가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우리은행 민영화의 첫 단추를 끼울 중동 국부펀드의 돈줄이 말랐다. 지난해 10월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공사(ADIC)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각각 우리은행 지분 10%, 4%를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금융위원회에 전달했다.
그러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13년 만에 처음 배럴당 20달러대 초반까지 주저앉는 등 중동펀드의 자금 집행 여력이 사라졌다. 중동펀드의 숨통이 트이려면 적어도 배럴당 50달러는 넘어야 한다. 세계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쉽지 않은 일이다.
둘째, 해외투자자 입장에서 우리은행은 ‘좋은 물건’이 아니다. 이는 수수료율이 낮은 국내 은행 시장의 환경과 연관이 있다. 국내 은행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글로벌 은행들과 견줘 뒤처진다. 선진국 은행들의 ROA는 1~2% 선이지만 국내 은행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우리은행 지분에 대한 매수세가 약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금융당국의 뒷심이 부족하다. 중국의 ‘꽌시(관계)’처럼 중동은 ‘와스타’ 문화가 강하다. 중동지역 비즈니스는 무엇보다 인맥이 중요한 셈이다. 그런데 현지 정부 및 국부펀드 고위 관계자들과 그간 물밑 접촉을 해온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이 최근 교체됐다.
이래저래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금융위는 여전히 중동만 바라보며 뜬구름을 잡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혈혈단신 유럽지역 투자자들을 찾아보겠다고 나섰다. 금융위는 하루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다른 묘수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