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가 뱅뱅뱅, 젠하이저 HD 630VB 리뷰

입력 2016-01-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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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겨울답질 않아, 왜 이렇게 따뜻할까. 며칠 전에 이렇게 구시렁댔던 것 같다. 그 바람에 벌을 받았는지 서울이 꽁꽁 얼어붙었다. 연일 영하 10도 가까운 날씨에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일이 두려울 정도다.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현관 앞에서 단단히 무장한다. 두터운 양말에 어그부츠를 껴 신고, 장갑에 마스크까지 동원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귀를 감쌀 차례다. 칼바람에 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얼얼함을 느끼는 건 질색이니까.

다행인지 요즘 내가 쓰고 있는 헤드폰은 어지간한 귀마개보다 따숩고 푹신하다. 이어패드 사이즈가 내 작은 귀를 다 덮어버릴 만큼 넉넉한 오버이어 제품이기도 하고. 코를 훌쩍이며 겨울길을 걸어도 귓가가 따뜻하니 마음이 놓인다. 약간 요다처럼 보이긴 하지만 괜찮다. 소리는 어떠냐고? 그래,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자. 젠하이저 최초의 밀폐형 하이엔드 헤드폰인 HD 630VB 사용기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젠하이저가 출시했던 밀폐형 헤드폰 중 하이엔드 라인은 없었다. 사실 어디나 마찬가지다. 대부분 오디오 마니아들이 찾을 만한 하이엔드 제품들은 오픈형 타입으로 제작되기 마련이다. 오픈형의 경우 공기가 입출될 수 있는 구조다. 때문에 사운드 재생 시 소리가 외부로 흘러나오도록 설계된다. 무슨 뜻이냐면 내부에서 음 왜곡이 일어날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반대로 밀폐형 헤드폰의 경우 이어패드 부분이 막혀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음 왜곡이 생길 수 있다. 밀폐형만의 장점이 많음에도 하이엔드 밀폐형 제품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HD 630VB의 경우엔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밀폐형임에도 불구하고 음 왜곡이 거의 없도록 설계됐다. 여기에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밀폐형 헤드폰의 역할에도 충실하니 야외에서도 실내에서도 음악에만 집중하긴 딱이다.

처음엔 여자인 내게 지나치게 크고 묵직하다는 느낌이 있었으나, 부드럽고 무게 중심 밸런스가 좋아 장시간 착용해도 부담스럽지 않다. 너무 물렁하지 않은 쿠션감이 귓가를 압박하지 않아 좋다. 실제로 지금도 5시간 째 쓴 채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데 편안하다.

디자인은 깔끔하다. 심심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래 두고 사용할 하이엔드 제품은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 알맞다. 메탈과 가죽의 조화가 제법 훌륭하다. 이어패드 안쪽의 숨겨진 레드가 포인트라면 포인트다.

그렇다면 내면의 포인트는 무엇일까? 젠하이저는 HD 630VB를 위해 트랜스듀서를 특별히 개발했다고 한다. 핵심 부품인 이 고성능 트랜스듀서를 통해 세밀하고 깊이 있는 베이스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고조파 왜곡률이 0.08%(1kHz, 100dB 기준)일 정도로 음 왜곡이 거의 없으며, 100% 알루미늄 소재의 코일 와이어를 사용해 정교한 음원 재생 능력을 갖춘 것도 특징이다.

HD 630VB의 특징인 트랜스듀서(Transducer)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베이스를 조절해가며 들어야 하는 까닭에 청음에 가장 적합한 장르는 단연 EDM 기반의 댄스곡이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베이스 컨트롤 효과는 확실하다.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과 비교해 이야기하자면 거의 서브우퍼의 유/무 정도의 수준으로 극명한 저음의 존재감이다. 베이스 다이얼을 최소로 돌리면 어떤 소스를 들어도 무난한 수준의 소리를 낸다. 베이스를 최소화한다고 해도 저음이 귓가에서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향처럼 은은하게 퍼질 뿐 존재감은 최저 베이스 상태에서도 건재하다.

하이엔드 제품이라고 해서 너무 어렵게 접근할 필요도 없다. 23Ω의 낮은 임피던스로 모바일 기기와의 궁합도 좋다. 케이블에 내장 마이크와 헤드폰 우측 이어컵에 컨트롤 버튼이 있어 스마트폰과 연결해 사용할 때 전화 수신이나 음악 감상도 용이하다. 특히 이동 중에 이어컵의 버튼을 눌러 볼륨을 조작해보니 상당히 편리하고 직관적이더라. 내장 마이크의 감도도 만족스럽다.

안드로이드와 iOS를 모두 지원하는데, 버튼 하나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

제일 재밌는 건 역시 앞서 언급했던 회전식 베이스 다이얼이다. 음악을 들으며 손쉽게 다이얼을 돌려 취향에 맞는 사운드 튜닝이 가능하다. 가볍고 발랄한 댄스곡에선 이 베이스 다이얼을 돌려봤자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저음이 묵직하게 깔려있는 음악에서는 다이얼을 돌리며 밸런스가 변화하는 맛에 크게 놀라게 된다. 베이스 다이얼을 점점 앞으로 돌려 베이스 강도를 높여봤다. 그러자 얌전하던 저음이 슬슬 존재감을 내비치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베이스를 최저, 최고 상태로 각각 1회씩 연속으로 청음해 보면 그 효과는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 제 아무리 막귀라도 그 차이를 감지할 수 있을 수준이다.

취향에 맞는 지점에서 손을 멈추면 그만. 나는 밋밋한 저음보다는 다소 강조된 저음을 좋아해서 자꾸만 다이얼을 한껏 돌리게 된다. 고음역은 그대로 두고 베이스만 만져주는(?) 신묘한 기능이다. 소리의 깊이가 달라지는 듯한 재밌는 경험을 하게 될 것.

보컬 성향의 곡도 저음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최적의 세팅으로 바꿀 수 있다. 보컬은 고음역이고 비트는 보통 저음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저음이 두드러지면 고음역이 기를 못 피는 건 당연하다. 하이파이 시스템에서 서브우퍼의 게인값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베이스 강조 다이얼과 DJ 헤드폰 느낌의 외형만 보고 비트가 강한 댄스 장르용 헤드폰이라 폄하할 수 있다. 물론 기본 세팅은 생김와 비슷한 느낌의 음질 성향을 지녔다. 좀처럼 반론하기 어려운 외형이다.

제일 만족스러운 건 장르 간의 편차가 없다는 것.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 없이 이것저것 기분 내키는 대로 듣는 편인데, 어떤 장르를 들어도 빠지는데 없이 밸런스를 잘 잡아주어, 오랜 시간 음악을 감상해도 피로도가 낮다. 조금만 더 가벼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처음엔 아이폰에 연결해서 사용하다가, 내친김에 좀 더 제대로 사용해보고자 소니의 NW-ZX2 플레이어와 PHA-3 포터블 앰프를 연결해 청음에 이용했다. 모두 Hi-Res 오디오를 지원하고 FLAC 음원의 196kHz/24bit 재생이 가능한 모델이다.

음원 소스는 헤드폰의 주파수 응답 능력이 10~42,000Hz 대역인 만큼 음실 손실이 적은 FLAC 음원을 청음했다. 고음질 오디오파일을 주로 제작하는 Stockfisch Records의 Closer to the music vol. 1~4을 위주로 들어봤다. 또 NW-ZX2에 데모 음원으로 들어있는 SACD 규격의 Hi-Res 오디오 파일도 이용했다. 대표적인 곡은 베토벤 Op. 74 현악 4중주, 마이클잭슨의 XSCAPE, 다프트펑크의 Get Lucky 등이다.

청음 환경은 일상적인 기어박스 사무실과 서울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정신없는 출퇴근길을 자랑하는 종로, 청계천 일대를 골고루 돌아다니며 들어봤다. 아웃도어 헤드폰인 만큼 패시브 소음 감쇄 기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다.

마음에 드는 포근함이다. 감히 평하자면 밀폐형 하이엔드 헤드폰의 레퍼런스 제품이라 할 수 있겠다. 실망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다들 일단 한번 청음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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