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혼찌검, 손찌검, 말찌검

입력 2016-02-12 10:23 수정 2016-02-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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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설 연휴에 모처럼 대중목욕탕에 다녀왔다. 완전 만원이었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들이 많았다. 서로 등을 밀어주는 모습이 보기에는 좋았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앉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간단히 샤워를 한 뒤 온탕 열탕에 번갈아 들어가 몸을 한껏 불리고 다락처럼 만들어진 수면실에 누워 땀을 제법 흘렸다. 그러고 나서 오랜만에 때를 밀었는데 국수발은 아니지만 제법 굵고 긴 때가 마구 밀려나왔다(윽, 더러워!). 이건 送舊迎新(송구영신)이 아니라 送垢迎新(송구영신)이네, 하고 ‘유식한’ 생각을 했다. 垢는 ‘때 구’자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풀장처럼 만들어 놓은 미지근한 수탕은 완전 ‘개구락지 운동장’이었다. 아이들이 물장구 치고 소리 지르고 수건을 서로 던지고 노는 바람에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안경을 쓴 초등학생 녀석 두 명이 안반뒤지기를 하다가 안경이 벗겨져 물속에 빠지자 “잠수!”를 외치더니 안경을 찾느라 난리법석을 부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하도 시끄럽게 굴자 어른 하나가 “조용히 해!”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잠시 조심하는 것 같더니 금세 다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제일 설치는 녀석을 불러 세우고 “너 혼 좀 나볼래?”라고 손찌검이라도 할 듯이 팔을 쳐들며 겁을 주었다. 아이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조마조마했는데, 발가벗은 어른끼리 싸우는 불상사는 다행히 없었다.

1시간쯤 지나 탕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는 동안 TV를 보게 됐다.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디자이너 황재근의 삶과 일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1월 30일에 나간 프로그램의 재방송이었다. 좌우간 그 디자이너는 일할 때 깐깐하고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고, 직원들이 물건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지적질’을 해댔다.

출연자 중 한 명이 “직원들 손찌검은 안 하죠?”라고 묻자 황재근은 “어휴, 손찌검은 안 하죠. 말찌검 수준입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말찌검이라, 그거 참 재미있는 말이네. 아까 목욕탕에서는 혼찌검에 이어 손찌검까지 하려던 사람을 봤는데.

그런데 찌검이 대체 뭐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말에 부딪힌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전을 뒤졌다. 두 가지 풀이가 있었다. 1)비듬의 경북지방 방언. 비듬은 살가죽에 생기는 회백색 잔비늘을 말함. 2)작은 모래나 흙이 묻어 있는 음식 등을 씹을 때 입에 걸리는 상태. 두 가지 다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손찌검은 뭐지? 손으로 남을 때리는 게 손찌검이다. 중국말로는 ‘動手打人’, 손을 움직여 남을 때린다는 말이니 우리말과 같다. 오케이, 알았어. 그러면 발로 때리면 발찌검, 입으로 때리면 입찌검, 코로 때리면 코찌검, 귀로 때리면 귀찌검일 수 있겠네?

설과 같은 명절에 가족 간의 싸움과 가정폭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손찌검 발찌검 입찌검 수준이면 다행이지만 칼부림까지 일어나니 문제 아닌가. 가족 간에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혼찌검 정도로 그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도대체 찌검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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