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의 세계는 왜?] 베네수엘라의 비극…저유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입력 2016-02-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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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AP뉴시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AP뉴시스

베네수엘라 경제가 파산 일보 직전으로 몰리면서 국민의 삶도 파괴되고 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비극적인 기사를 전했습니다. 베네수엘라 서부에 있는 한 병원에서 6명의 유아가 의약품이나 인공호흡기가 부족해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만성적인 정전에 정부가 전기 사용시간을 제한했고 사람들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게에서 생필품을 사고 싶어도 물건이 없습니다.

베네수엘라가 이런 비극에 처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국제유가 하락이겠지요.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 베네수엘라는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남미 반미진영의 선두를 자처하며 떵떵거렸습니다. 그러나 석유 이외 마땅한 제조업 기반이나 기술이 없는 베네수엘라는 유가 하락에 급격히 몰락하게 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이 700%로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의 마이너스(-) 10%에 이어 올해도 -8%로 세계 최악의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비극을 초래한 것은 유가보다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입니다. 지난 2013년 사망한 차베스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기업 국영화와 가격 통제 등 과거 실패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위기가 심화하고 있지만 마두로 정권은 미국과 민간기업의 탓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합니다.

또 마두로 대통령은 식량난에 대처하기 위한 도시농업부를 신설하는 등 엉뚱한 해법에 몰두합니다. 그는 자신도 직접 50마리 닭을 기르고 있다고 하네요.

확실히 베네수엘라는 유가 하락에 그 누구보다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석유는 베네수엘라 수출의 96%, 국가 재정수입의 약 절반을 각각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가 이런 위기에 대처할 여유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WSJ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였던 시기에도 40달러라는 가정으로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아도는 자금을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 대처용으로 놔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게 하는 대신 베네수엘라의 부패한 정치인과 관리들은 이 자금을 해외로 은닉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만일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기금 규모는 30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 돈도 많이 빌렸습니다. 베네수엘라의 대외 부채는 약 1100억 달러에 이릅니다. 바클레이스은행의 알레한드로 아레아사 중남미 전문 이코노미스트는 베네수엘라가 앞으로 1년 안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낼 가능성을 85%로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두로만의 잘못이 아니라 베네수엘라 국민이 자초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총선에서는 중도우파 성향의 야권이 압승을 거둡니다. 그런데 이런 심판이 너무 늦었던 것이 아닐까요. 차베스 시절에도 경제정책에 대한 문제점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국민은 그럼에도 계속 차베스를 지지했습니다. 마두로는 무능하고 아무런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차베스의 후광으로 2013년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는 명언이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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