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베네수엘라가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그간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공짜에 가까웠던 휘발유 소비자가격을 대폭 인상하고 자국 화폐가치를 대폭 떨어뜨리는 극약처방을 내놨다고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날 휘발유 소비자가 인상과 자국 화폐가치 평가 절하를 선언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방송 연설에서 “경제 위기 해결 압력이 커지면서 고급 휘발유의 소비자가격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옥탄가 91짜리 휘발유 가격은 현재 ℓ당 0.07볼리바르에서 1볼리바르로 오른다. 인상률은 무려 1392%다. 옥탄가 95짜리 휘발유는 0.097볼리바르에서 6볼리바르로 올라 가격이 6086% 상승한다. ℓ당 6볼리바르는 이날 기준 공식 고정환율을 적용하면 1갤런(약 3.78ℓ)당 11센트(약 134.97원)에 불과해 인상 후에도 베네수엘라의 휘발유 가격은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이와 함께 마두로 대통령은 정부 공식환율(CENCOEX)을 달러당 6.3볼리바르에서 10볼리바르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볼르바르 통화 가치를 37% 절하한다는 이야기다. 또 기존 3개의 환율 체계를 2개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는 암시장을 제외하고 정부 공식환율(CENCOEX), 외환입찰배정시스템(SICAD), 시장환율(SIMADI) 등 총 3개의 환율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이날 상향 조정한 CENCOEX는 정부가 식품의약품 등 생필품을 구입할 때 적용된다. SICAD는 베네수엘라 기업들이 해외에서 공산품을 수입하기 위해 정부 입찰을 통해 달러를 배정받을 때 적용되고 SIMADI는 환전소와 은행 등에서 개인이 달러를 취득할 때 적용된다. 이날 정부는 SICAD를 없애고 달러당 203볼리바르로 고정됐던 SIMADI 환율을 변동환율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막대한 ‘오일머니’로 좌파정권을 이어온 베네수엘라 정부에게는 이번 대책은 쉬운 결정은 아니다. 지난 1989년과 1996년 베네수엘라는 저유가로 인한 경제 위기에 따라 휘발유 가격을 올렸으며 그때마다 폭동이 일어나는 등 민심이 크게 동요했기 때문. 10년 넘게 휘발유를 비롯한 각종 생필품 가격 통제, 기업 국유화, 공공지출 확대 등 선심성 조치가 이어지면서 베네수엘라의 예산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으로 뛰었다. 국제 유가가 높을 때는 적자를 감당할 수 있었으나 2014년 고점 대비 70% 하락하자 수출 소득의 96%를 석유에 기대던 베네수엘라가 가장 큰 직격탄을 맞았다.
석유 소득 감소는 외화 차입으로 이어져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볼리바르화 가치는 폭락을 거듭하자 마두로 대통령은 결국 고정환율에도 칼을 댔다. 베네수엘라의 총 채무는 1300억 달러에 달한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베네수엘라가 앞으로 1년 안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낼 가능성을 85%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9월 기준 141%였던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이 올해 720%로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