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폐인 100달러짜리 지폐가 멸종 위기에 놓였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등이 50달러 및 100달러 이상의 고액권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에서 유통되고 있는 최고액권인 500유로짜리 지폐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서머스 전 장관은 최근 워싱턴포스트(WP)의 경제 전문 블로그인 ‘웡크블로그(Wonkblog)’ 섹션 기고에서 “기존 지폐를 모두 없앤다는 생각은 지나친 것이다. 그러나 고액권의 새로운 발행을 일시 중지해 세계는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WSJ는 그의 말대로라면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화가 그려진 100달러 지폐가 시중에서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100달러짜리 지폐는 더이상 발행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하버드대학의 선임 연구원 피터 샌즈가 이끄는 필진이 최근 내놓은 「Making it Harder for the Bad Guys : The Case for Eliminating High Denomination Notes(가칭 : 범죄자들을 보다 곤란하게 만드는-고액권 폐지의 논거)」라는 논문의 주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이 논문은 1000스위스프랑, 500유로, 100달러 등 고액권의 폐지가 악용을 줄이고, 탈세자와 테러집단, 마약 밀매자, 금융 범죄자, 인신 매매자를 곤경에 빠뜨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액권을 폐지하긴 쉽지 않다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은 1969년에도 고액권에 대해 규제를 단행했는데 아직까지도 당시 발행한 지폐가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와 미 재무부는 500달러권과 1000달러권, 5000달러권, 1만 달러권 발행을 중단했다. 다만 이들 지폐는 발행을 중단했지만 법률상으로는 통용을 인정했다. 2015년 시점, 이들 지폐의 액면 가격은 약 3억 달러였으나 현재는 골동품으로서 그 가치가 액면가를 훨씬 웃돈다.
WSJ는 100달러권을 폐지하는 건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WSJ에 따르면 2015년 말 시점에 약 1조3800억 달러의 현금이 세계 경제에 유통 중이다. 그중 100달러권은 1조800억 달러가 유통 중이다. 100달러권이 108억장 나돌고 있다는 의미다.
WSJ는 달러 발행량이 미국 경제 성장 이상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절반 이상은 미국 밖에서 유통되고 있는데, 그 일부가 범죄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금의 악용은 마약거래보다 탈세 쪽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 내국세입청(IRS)에 따르면 2006년 시점에 탈루된 세금은 3850억 달러. 같은 해 재정적자가 2500억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탈루 세금만 아니었으면 적자는 면할 수 있었던 셈이다.
WSJ는 고액권을 폐지함으로써 이러한 부정행위가 얼마나 감소할 지는 알 수 없으나 소득을 속이기는 어려워질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