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에세이] 복수초와 여성의 힘

입력 2016-02-1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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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

도무지 열 평 한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을 한다고 후배 하나가 집에 왔다. 이사 온 집이라고 휴지 한 뭉치를 사가지고 왔다. 운이 줄줄 풀리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핸드백에서 예쁜 초 두 개를 꺼내 책상 위에 놓으며 말했다. “무드 있는 시간도 보내구요. 이 초에 불을 켤 때에는 제발 행복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줄줄 풀리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을까. “제발”이라는 말이 목에 걸렸다. 내가 너무 칭얼거렸나, 난 늘 왜 이래 하면서 말이다. 누구나 모두 우리는 늘 이것을 바란다. 줄줄 풀리는 행운과 꽉 찬 행복이라는 것.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없지만 누구도 그것을 완전하게 가진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완전한 행복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만 해도 “복 많이 받으세요”를 쌓으면 집 두 채는 될 것이다. 그 말의 선물을 덕의 완성으로 이끄는 것은 자신의 노력 아닐까. 지금 내가 노력이라고 말한 것은 부지런히 일하라는 뜻만은 아니다. 물론 노동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인정’이다. 작은 것의 인정, 그리고 순간의 인정이 행복과 줄줄 풀리는 것을 소유하게 만든다.

아마도 나는 그 후배에게 내 행복을 대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불행하다고는 하지 않았고 외롭다고는 자주 말한 것 같은데 그 말이 후배에겐 좀 부담이었을까. 우리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행복이나 줄줄 풀리는 행운에 대해 응답할 줄을 잘 모른다. 아니 표현력이 부족하다.

남이 보면 별 것 아닌데 “아 좋아요!”를 연발하는 사람이 있다. 행운은 그런 사람에게 갈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신경질을 부리고 불만투성이인 사람에게는 행운도 얻어맞을까 봐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은 행복이다’라는 인정이야말로 행복의 주인공이 되는 일이다.

요즘 행복론이 뜨거운데 학식이나 이론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조금 부족해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넘치는데 불만만 토하는 사람이 있다. 행복은 아주 이기적이어서 내가 행복하다는데 누가 토를 달겠는가. “저런 주제에”라고 누가 뒷북을 치면 그 사람은 행복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행복을 만져보진 못할 것이다. 나는 일기장에 ‘오늘 내 인생교사가 다녀갔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도 변해야 할 구석이 많은 사람이라고 재반성을 했다.

내 인생교사처럼 초 두 개에 불을 붙이면서 ‘아 행복해’라고 생각한 적은 있을지 몰라도 말한 적은 없다. 나는 그 침묵을 ‘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혼자서도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에 와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복수초’라는 식물이다.

복수초는 참으로 훌륭한 꽃이다. 그렇게 복수초처럼 스스로 자기의 약점을 보완하고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처럼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하긴 지금까지 그렇게 혼자 다스리며 살아오긴 하지 않았는가. 시 한 편을 썼다.

내가 스스로 피어나자!

몸도 키도 작아서

다른 풀들에게 햇빛도 곤충도 다 뺏겨서

홀로 몸에 머리 치받는 열을 만들어

누구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복수초

누구보다 먼저 2월에 꽃대를 올려

“살아내자” “피어내자”

오직 결의 하나로

얼음과 잔설을 차고 일어서서는

노오랗게 햇빛을 기어이 받아내

생존 위기를 넘어서는

21세기의 화두(話頭)

복수초

영하 20도의 혹한을

스스로가 비축한 몸의 열로 녹이며

괴력의 미소로 일어서는

또 하나의 이름

얼음새꽃

얼음 속을 새처럼 날 듯 피어나

얼음새꽃이라

강한 사내보다 더 억척으로 피었지만

절정의 우아한 진노랑 여왕꽃

왜 복수초를 보면

명치 끝이 지르르한가?

복수초에 해당하는 여성이 얼마나 많겠는가. 21세기의 화두라는 것은 누구나 인간은 이런 자기보완의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징징댄다고 행복이 오진 않으니까 행복이 오는 통로를 스스로 만들어 꽃의 이름으로 우뚝 서는 복수초가 여성의 본질적 힘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복수초는 자신이 너무 작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 아무리 힘을 써도 크고 굵은 나무를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가을 일찍 복수초는 잠에 든다. 오랜 잠으로 몸에 열을 만들어 남들은 아직 겨울이라고 생각하는 그 찰나 얼음을 자신의 열로 녹이며 꽃대를 올리고 드디어 3월이면 꽃을 피운다. 눈물겨운 식물의 일생이지만 그는 당당하고 황제처럼 아름답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고통을 이겨내며 겨울과 싸워내는 모습이야말로 전통적인 여성과 닮았지만 현실적 여성과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가 꼭 여성만이겠는가. 21세기 화두라는 것은 어떤 생명이건 이런 자기지혜가 필요하며 현실에 맞춰 생활 방법을 모색해 내는 것이 인간의 도전이며 행복 찾기가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역사에는 이런 복수초 같은 지혜로운 여성들이 많지만 나를 찾아온 후배, 줄줄 풀리라고도 하고 제발 행복하라고 타이르고 간 그 후배는 현실적으로 불행한 여자다. 결혼 후 이혼하고 한 아이를 과외를 하며 길렀지만 그 아들이 고3때 몸을 다쳐 거의 누워 있는 상태이다.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온몸을 바치는 것을 본 아들이 누워서도 열심히 책을 읽어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작업으로 겨우 일을 하고 있다.

그 후배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늘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볼 때마다 행복을 껴입은 억지긍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늘 씩씩하고 실지로 지금이 행복해 보인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 남 행복을 간섭하고 다니는 후배지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니 그 지경에도 행복한데 행복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복수초 같은 그 여자가 준 두 개의 초에 불을 켜면서 나는 그 초를 준 후배의 행복을 빈다.

그러노라면 복수초 꽃대가 쭉 올라오고 그 꽃을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바라볼 수 있지 않겠는가. 봄은 기적이다. 그렇게 칼바람이 부는 혹한의 얼음덩이를 녹이며 기어이 오는 봄은 기적이다. 놀랍지 않은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폭설에 꺾이던 나무도 못내 웃음으로 싹을 틔우지 않는가. 몸이 오싹한 그 봄을 맞이하는 우리도 모두 기적이다. 기적처럼 봄은 그렇게 우리에게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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