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사업다각화 시대의 종언

입력 2016-02-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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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업다각화’는 고도성장 시대에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구성된 우리 경제의 성장 모델이었다. 재벌그룹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예컨대, 고 정주영 회장 생전의 현대그룹은 건설, 자동차, 전자, 철강, 정유, 조선, 상선, 종합상사, 증권, 보험, 백화점 등 거의 모든 사업 분야에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고, 이는 다른 재벌그룹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벌그룹 총수를 최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계열기업이 협력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IMF 이전에는 효율적인 경영 모델로 평가되기도 했다. 비관련 사업다각화는 실제 ‘재무적 시너지’라는 측면에서 정당성이 인정되기도 한다. 경기에 민감한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경기를 잘 타지 않는 사업 분야로 진출하여 사업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재벌그룹의 사업다각화는 너무나 무분별했고, 그로 인해 IMF가 발생하면서 한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그룹 전체가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우그룹과 쌍용그룹 등 다수의 그룹이 이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IMF 이후에도 사업다각화를 시도한 그룹은 많았으나, 성공보다는 실패한 재벌그룹이 많았다. 극동건설을 인수하려다 그룹 전체가 해체될 뻔한 웅진그룹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사업다각화를 위하여 현사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한다. 직접적인 인수비용도 소요되지만. 현 사업에 투자될 재원이 다른 분야 투자로 전용되는 것이므로 ‘기회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현 사업 분야에 적절한 투자가 적시에 이루어지지 못해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철강, 조선 등 대한민국 주력산업의 위기가 문제 되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 등 수많은 기업을 인수한 재원으로 철강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투자했으면 어땠을까,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오일뱅크,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한 재원을 가지고 조선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투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재계에 ‘선택과 집중’ 전략과 관련하여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2년간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방위산업),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비피(BP)화학, 삼성에스디아이(SDI)의 케미컬 사업 부문을 매각했고, 현재는 제일기획의 매각설도 보도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사업다각화가 아닌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가장 경쟁력이 있는 사업에 집중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일감몰아주기로 부당 지원해 주는 그룹 내 내부거래가 아니면 생존하기 어려운 계열사는 과감히 정리해야 하고, 핵심사업이 아닌 분야도 매각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최근 행보는 전체 경제의 측면에서도 매우 선도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최근 국회에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이 진통 끝에 통과되었다. ‘원샷법’은 잠재적 부실을 안고 있는 기업들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고, 소수주주와 채권자 이익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일로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만 효력을 가진다. ‘원샷법’에 대한 우려도 많지만 기업이 망하는 것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해 존속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소수주주와 채권자에게도 유리하기 때문에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단순히 경영권 승계를 위한 ‘꼼수’로 활용하기보다는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즉 재벌그룹은 비핵심 사업 분야의 자발적인 ‘빅딜’을 통해 각 그룹이 핵심사업 분야에 집중하는 방안을 시급히 강구하여야 하며, 정부는 이러한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지원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실기하면 대한민국 경제에 매우 큰 부담이 될 것임을 모든 관계자들이 자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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