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가정의 아이가 부모를 만나는 '면접교섭권'을 조부모에게도 인정한 법원의 첫 결정이 나왔다. 하지만 현대 가족 개념에 반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2단독 제갈창 판사는 신모 씨가 사위 이모 씨를 상대로 낸 면접교섭 허가신청을 받아들였다고 23일 밝혔다. 심판이 확정되면 신 씨는 외손주 이모(4) 군을 매월 첫째, 셋째주 일요일 오후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만날 수 있다.
이 씨와 결혼한 신 씨의 딸은 2012년 3월 이모 군을 출산한 직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외할머니인 신 씨의 집에서 이 군을 양육해온 이 씨는 재혼을 하기 위해 2015년 1월께 독립했다. 이 군과 함께였다. 그러자 신 씨는 3년 가까이 양육해온 외손주를 만나게 해달라며 법원에 면접교섭 허가신청을 냈다.
사위 이 씨는 "이 군이 새엄마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면접교섭권을 인정하면 이 군이 자신의 친모가 따로 있고 자신의 출생 과정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 군의 복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갈 판사는 민법에서 직접적으로 정하고 있는 면접교섭권자가 아닌 외조모라도 예외적으로 이미 사망한 친모 대신 면접교섭을 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판단했다. 민법 837조는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권자는 부모로 규정하고 있다.
제갈 판사는 "외할머니 신 씨가 친모를 대신해 3년 가까이 깊은 유대와 애착 관계를 형성해온 경우라면 이를 아버지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단절시키는 것이 자녀의 복리와 건전한 성장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심판에 대해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법적 근거가 없는 조부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는 것은 현대 가족의 개념에 반한다는 것이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현대 가족 개념은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 우선"이라며 "조부모가 손주를 만날지 말지 여부는 법적인 권리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도덕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