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서울 출신인 이 전 총재는 전주고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해방이후 전국학생총연맹 대표의장을 지내며 반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19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한 뒤 4대·5대·8대·9대·10대·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인은 1955년 민주당을 창당했으며 5.16 이후엔 정치규제를 당해 해외로 망명하기도 했다. 1970년에는 신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 부의장을 거쳐 1976년엔 신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냈고 1980년 신군부 집권 이후 정치쇄신법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하기도 했다.
1985년 12대 총선 때 신민당을 창당하고 전주·완산에서 당선돼 7선 의원이 됐다. 건국50주년기념사업회 회장(1998년),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2007~2009년)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창희 여사와 아들 이동우 전 호남대 교수, 딸 이양희 UN 미얀마인권보호관, 사위 김택기 전 의원이 있다.
발인은 다음 달 2일이고 빈소는 서울삼성병원에 차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