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주류인사들이 한때 돌풍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파죽지세로 경선판을 뒤흔들자 제동에 나섰다. 하지만 압도적인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트럼프는 이러한 움직임에 “무소속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으로 맞대응하고 있어 공화당 내 내홍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먼저 트럼프 저격에 나선 공화당 주류인사는 200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다. 롬니 전 주지사는 3일(현지시간)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 유타대학 연설에서 “내가 아는 것은 트럼프는 가짜이고 사기꾼이라는 것”이라면서 “그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고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특히 롬니는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한 오락가락하는 발언과 여성과 소수자 장애인들과 관련한 막말 논란 등을 꼬집었다. 롬니 전 주지사는 “트럼프는 약자를 협박하고 여자를 혐오하는 인물”이라면서 “만일 공화당이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지명한다면 안전하고 번영된 미래에 대한 전망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애리조나 상원의원도 뒤이어 반(反) 트럼프 진영에 서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성명을 내고 “국가 안보 이슈에 관한 트럼프의 지각없고 위험한 발언에 대해 나 역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매케인은 이러한 우려가 65명의 공화당 안보·외교 정책 리더들이 제기된 것이라면서 당내 상당수 인사가 트럼프의 반대편에 서 있음을 시사했다. 미 의회 전문지 더 힐(The Hill)에 따르면 이날 현재까지 트럼프 반대 입장을 밝힌 주요인사는 연방의원을 포함해 총 22명에 이른다.
이 같이 공화당 내 거물급 인사들이 ‘트럼프 때리기’에 나선 것은 경선 최대 승부처였던 ‘슈퍼 화요일’에 이어 2차 승부처인 오는 15일 ‘미니 슈퍼 화요일’까지 트럼프에 내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니 슈퍼화요일까지 트럼프가 싹쓸이 하게 될 경우 사실상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될 수밖에 없기 때문.
하지만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 내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크리스 콜린스(뉴욕), 던컨 헌터(캘리포니아) 하원의원과 이번 경선 중도 사퇴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공화당내 주류 인사들의 비판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는 메인 주 포틀랜드 유세 도중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2012년 대선 당시 롬니가 자신의 지지 선언을 부탁했던 사실을 꼬집어 비판했다. 트럼프는 “롬니는 4년 전 내게 지지를 구걸했다(Begged)”면서 “내가 ‘밋, 무릎 꿇어’라고 말하면 진짜로 무릎 꿇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롬니는 4년 전 형편없이 깨진 실패한 후보”라면서 “이번에도 출마하려다가 내가 무서워 출마 계획을 접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무소속 출마까지 시사하며 공화당 주류 인사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앞서 MSNBC 방송 인터뷰에서 “TV를 보면 나를 비판하는 주류 기득권층의 광고로 넘쳐나는데 이는 정말로 불공정한 것”이라면서 “만약 내가 당을 떠난다면 무소속 출마, 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무소속 출마에 관계없이 나를 지지하는 수백만 명의 유권자들은 나와 함께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편 이날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공화당 내 군소후보인 벤 카슨의 TV토론 불참을 언급하며 카슨의 지지자들에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