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액면분할을 결정한 아모레퍼시픽은 주가 부양과 유동성 확대란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그러나 ‘황제주’로 꼽히는 대다수 기업은 액면분할에 여전히 시큰둥하다.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주식 시장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황제주의 액면분할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우량 대형주의 주당 가격을 낮춰 개인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배당수익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액면분할을 하더라도 시가총액이나 실질주가, 재무구조 등 기업가치에는 변동사항이 없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호응도는 높지 않다. 고가주 계열사를 줄줄이 거느린 롯데그룹은 7일 국내 상장 기업 중 최고가 황제주인 롯데제과의 액면분할을 결정했지만 롯데칠성과 롯데푸드 등 다른 고가주의 추가 액면분할 여부는 미지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일부 기업들이 황제주를 유지해 오너 일가의 배당 수혜를 보존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고가주는 대부분 우량 기업으로 고액 배당을 시행할 확률이 높지만, 소액투자자의 접근이 어려워 혜택은 대부분 오너 일가에게 돌아간다.
개인투자자가 많아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주가 변동성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액면분할을 꺼리게 하는 요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개미들이 많이 달라붙으면 관리하기 어렵다는 기업들의 인식이 여전하다”면서 “액면분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애플 등 해외 대표 우량 기업처럼 개인투자자를 우선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우리 증시에서도 액면분할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액면분할에 고개를 젓는 기업들의 속내는 황제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높은 주가가 곧 기업의 가치를 말해준다는 인식이 오너들 사이에 여전히 팽배하다”라고 꼬집었다. 이들 기업은 고액 주가 유지를 통해 업종 대표주의 자리에 올라 시장 선도업체로서 기관 투자자 유치 효과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