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언론도 한몫하고 있다. 정치 신인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면 으레 “새 술은 새 부대에”라며 희망을 걸 수 있다는 식으로 대서특필한다. 이런 표현은 문제가 있다. 17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물갈이 비율은 매번 50%를 훨씬 상회하는데, 그럼에도 ‘최악의 국회’라는 기록은 매번 경신되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에도 이른바 새로운 인물 영입 문제가 정치권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최소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경우 새로운 인물보다는 현역의 재입성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의 시도가 정치판의 개혁을 위해서는 사람을 바꾸는 게 대수가 아니라는 문제 인식에서 비롯됐다면 신선하고 좋을 텐데 정치공학적 의미, 그러니까 본인의 대선 경선 구도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현역의 재입성을 주장한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에 문제이다.
반대로 친박들은 새로운 인물 영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대선 경선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선 구도를 만들려고 한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고 있다. 결국 명분이야 총선 승리에 있지만, 그 이면에는 총선 이후의 정국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친박과 비박 간의 샅바싸움이 있다는 말이다. 지난번에 일었던 살생부 논란도 따지고 보면 친박과 비박 간의 이런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 이번에 불거진 여론조사 데이터 유출 의혹도, 바닥에는 이런 갈등이 숨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서로 상대를 의심하는 진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더구나 현역 의원의 물갈이가 시작되는 듯하니까 비박 측에서는 살생부 그대로 상황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며 반발할 기세다. 물론 살생부는 과거 총선에서도 등장했고 물갈이에 대한 반발 역시 매번 총선 때마다 발생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예를 들어 19대 총선의 경우 이명박 정권 말기에 치러졌고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라는 뚜렷한 대선 후보가 있었다. 그래서 살생부가 돌았지만 거기에 대한 반발의 강도가 지금만큼 세지 못했다. 18대 총선은 이명박 정권 초기에 치러져 ‘당의 주인’이 확실한 상태에서 공천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당내에 김무성 대표라는 대선 주자가 있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막강한 대선 후보라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2년이나 남은 상태이기 때문에 김무성 대표의 입지가 그리 확고하지 못하다. 한마디로 김무성 대표가 명실상부한 새누리당의 대표 역할을 하기에도 역부족이고 그렇다고 막강한 대선 후보의 자리매김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말이다.
상황이 이러니까 당 대표가 반발하는 모양새만 보일 뿐 상황을 주도하지 못해 당내에 혼란만 가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선 살생부의 진위를 떠나 그 파괴력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누리당의 내부 균열은 더욱 거세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가능한 것이다. 이번 총선이 더욱 흥미진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