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첫선을 보인 꿈새김판은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가 나자 ‘마지막 한 분까지 세월호 실종자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합니다’라고 빌었다. 연말에는 ‘토닥토닥’ 네 글자로 시민들을 위로했다. 지난해에는 메르스로 인한 슬픔과 극복 의지(6.18~7.19), 광복 70주년의 환희(8.1~8.31)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소녀적이다. 꿈이란 원래 그런 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행정기관이 굳이 이런 말까지 해야 할까 싶다. 세월호 사고 직전에 내걸렸던 ‘보고 싶다. 오늘은 꼭 먼저 연락할게’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문안은 시민들의 응모작 중에서 선정한다지만, 지난해 9월의 ‘보이니, 네 안의 눈부심’도 감성적이거나 감상적이고 소녀적이다.
2015년 새해에 등장한 ‘당신의 ( )가 좋아요, 그냥’도 비슷하다. 게다가 이 말은 괄호 다음의 토씨를 ‘가’로 한정하는 바람에 받침이 없는 말은 넣을 수 없는 문제점(2015년 1월 16일자 ‘즐거운 세상’)도 있었다.
이런 게시판의 원조인 교보생명의 광화문글판(1991년 시작)에는 지금 ‘봄이 부서질까봐/조심조심 속삭였다/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라는 최하림의 시가 걸려 있다. 2009년 11월부터 운영 중인 우리은행 본점 글판은 두 달마다 글을 바꾼다. 올해에는 피천득의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에 이어 ‘솜사탕처럼 벙그는/살구꽃같이/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라는 권영상의 시 ‘4월이 오면’을 소개하고 있다.
수원에는 AK플라자 수원점 건물에 ‘수원희망글판’이 있다. 수원시가 2012년 10월부터 운영하는 글판에는 현재 ‘꽃씨 속에 숨어 있는/꽃을 보려면/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정호승의 시 ‘꽃을 보려면’에서 발췌)가 걸려 있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거리의 문장’은 너무 많을 정도다. 그런데 서울시와 같은 행정기관까지 뛰어들어 민간과 감수성을 겨루고 다퉈야 할까. 감성은 감상과 통하며 꿈은 현실을 비현실화한다. 꿈의 현실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행정기관이 거꾸로 현실을 꿈으로 바꾸고 있다. 글판의 성격도 애매하다. ‘나를 잊으셨나요?’와 ‘전화할게’는 메시지의 성격과 결이 판이하다.
그렇게 소녀 같은 소리를 할 바에야 차라리 의미 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하면 어떨까. 역대 서울시장이나 한성판윤에 관한 정보, 서울의 하루에 관한 통계, 함께 기억해야 할 의사자 등 의미 있는 자료가 많을 것이다. 요컨대 글판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한편, 가볍고 감성에 치우친 ‘소녀행정’을 지양하고 지성적이고 진지한 ‘어른행정’을 하라는 뜻이다.
수원시의 경우 겨울 추위가 닥쳤는데도 ‘가을 크다. 가을은 올 시간보다 가버린 시간이 더 크다’는 문구를 그대로 두는 ‘늑장행정’으로 비난을 산 일도 있다. 서울시야 그러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