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⑥] 정춘택 3대 증권감독원장

입력 2016-03-15 11:01 수정 2016-05-1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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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 신축·외풍 차단…감독기관 ‘마이홈·마이웨이’ 시대 열어

고(故) 정춘택 전 증권감독원장은 청사 신축, 외풍 차단과 같이 증감원의 권위를 높이고자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대 고 홍승희 전 원장이 주춧돌을 놓고 2대 고 박봉환 전 원장이 기둥을 세웠다면 정 전 원장은 증감원에 벽을 두른 셈이다.

정 전 원장의 재임 기간은 길지 않았다. 그는 동화통신 외신부 차장, 재무부 외환국장, 조달청 차장, 외환은행장, 산업은행 총재를 거친 뒤인 1989년 2월 5월 증감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정 전 원장은 1990년 1월 11일에 퇴임했다. 만 1년이 되지 않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그는 당시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경북고 동기이자 TK(대구ㆍ경북) 세력이라는 점 때문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정 전 원장은 특히 재임 중에 증감원의 청사 신축 허가를 받아냈다. 증감원은 1977년 창립 이후 셋방살이를 지냈다. 그러다 보니 인력을 크게 늘리기 어려웠다. 증권시장에서 감독기구의 역할은 중요해졌지만 업무의 양을 늘리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박 전 원장은 청사 신축을 줄곧 추진했지만 최종 허가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 전 원장은 취임 직후 단번에 신축 허가를 받아내며 그의 정치력을 보여줬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로에 있는 증권감독원 사옥(현 금융감독원 사옥)은 1990년 9월 착공돼 1994년 6월 완공했다.

증감원 출신의 한 관계자는 “지금 금감원에 재직하고 있는 증감원 출신들은 정 전 원장을 ‘사옥을 세운 인물’로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원장은 증감원이 재무부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증감원은 창립 10년이 넘은 뒤에도 여전히 재무부의 시녀 노릇을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당시 실세인 정 전 원장의 취임이 증감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정 전 원장 역시 취임 직후 급여인상, 인력충원, 검사요원 확대를 추진하며 과감한 실행력을 보여줬다. 또 인사 적체 현상을 해소하고자 증감원의 부장급 간부를 증권사에 보낸 것도 정 전 원장이었다. 당시 경제 정책 전반의 모든 사항을 재무부가 결정해온 것을 고려하면 정 전 원장의 행보는 파격이었다.

정 전 원장은 이미 취임식 때부터 이 같은 기조로 확고히 했다. 그는 취임 이후 언론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재무부로부터의 독립과 관련 “앞으로 공부를 해나가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자본시장 감독과 관련해서는 “자기가 낳은 자식도 제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 300명 밖에 안되는 직원들로는 검사에 한계가 있다”며 증감원 자체 권한 강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물론 정 전 원장의 증감원장 취임과 관련 결이 다른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 전 원장은 경제기획원 재경서기관과 재무부 외환국장을 지냈다. 그가 증감원장에 선임된 것을 두고 인사 전반에 걸친 재무부의 영향력이 커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당시 증감원 노조는 “사회 전반의 민주화, 자율화 움직임에도 재무부의 간섭은 날이 갈수록 심도를 더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신임원장은 증권관리위원회와 증감원의 위상 정립을 위해 무엇보다 증권거래법 개정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언론과 시민단체 일부에서는 정 전 원장이 제5, 6공화국 시절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던 고 이원조 전 의원 역을 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정 전 원장이 증감원장 자리에서 조기에 물러난 것도 그가 실세였던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그는 증감원장에 취임한 해인 1989년 12월 8일에 은행연합회 회장에 선임됐다.

정 전 원장은 증감원장의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연합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증권관리위원회는 한 달 동안 열리지 못했다. 업무 공백을 겪은 것이다.

이후 4대 증감원장이 선임된 것은 1990년 1월 31일이다. 정 전 원장이 직전 해 12월에 은행연합회 회장에 선임된 것을 고려하면 2달 이상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정 전 원장은 자리 이동은 증감원장 후임 인선에 밀렸다기보다는 증권보다 산업 규모가 큰 은행연합회가 실세를 모시고자 총력을 기울인 결과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 전 원장은 은행연합회장 시절에는 명동 은행회관 건립을 관철하기도 했다.

이밖에 정 전 원장은 외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영어와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정 전 원장은 증권원장이 되기 전에는 주미 재무관, 주미 경제담당공사 등에서 일했다. 이 덕에 그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 평가됐다. 1990년대 초에는 자본시장의 국제화와 개방이 주요 이슈였기 때문에 각 기관에서는 그의 국제적 감각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정 전 원장은 지난 2013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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