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이세돌과 알파고의 ‘이 한 수’

입력 2016-03-1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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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이 글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마지막 대국이 시작되기 전에 쓴 것이다. 5국의 승패가 어찌 되든 알파고가 3승을 거둠으로써 승부는 이미 끝났다. 그러나 5국에서 진다 해도 이 9단의 4국 승리는 값지고 빛난다. “이기면 진정 기쁘고 져도 또한 즐겁다”[勝固欣然 敗亦可喜]지만, 이 경우는 “져도 또한 자랑스럽다”[敗亦自豪]고 할 만하다.

이 9단의 0대 5패를 예측했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김진호 주임교수는 “한 번만 이겨도 진짜 천재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두 번 이긴다면 인류의 승리”라고 말했다. 이 9단의 승리는 천재가 인류에게 선물을 준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 ‘세기의 대결’에서 우리는 어떤 선물을 얻었나? 계가와 복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개인의 삶이든 국가 운영이든 회사 경영이든 불계패를 해서는 안 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승부를 겨루는 치열한 자세로 판을 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늘 ‘이 한 수’를 찾아야 한다. 알파고는 최상의 이 한 수를 찾도록 설계돼 있다. 이 9단은 4국에서 ‘신의 한 수’로 승리한 뒤 “그 장면에서는 다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한 수였다”고 말했다. 바둑은 돌이 놓임에 따라 맥과 급소가 달라진다. 그래서 기사들은 이 한 수를 찾는다. 인간의 삶에도 그 국면에 꼭 맞는 수가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이들은 이 한 단어를 찾고, 사진가는 이 한 장을 찍기 위해 노력한다. 초읽기에 몰린 기사처럼 머리를 싸매고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겸손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되새겨야 한다. 이 9단은 3패 후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대국 전에는 5대 0 완승을 자신할 만큼 오만했다. 그는 “바둑 실력은 패하는 과정에서 늘게 돼 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실수를 줄이고 상대를 극복하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실 알파고의 패배를 전제로, 알파고에게 들려준 말이었지만 그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알파는 그리스 문자의 첫 번째 글자로, 사회적 동물의 사회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동물, 최상위 포식자이며 지능과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들의 무리(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의미를 갖는다. 알파고는 그런 바둑이다. 모든 인공지능에 ‘알파’라는 접두어를 붙일 수 있다.

이 9단은 “사람도 아직 바둑을 다 알지 못한다. 그만큼 어려운 게 바둑”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알파고는 계속 진보해 바둑의 신이 있다면 한판 겨뤄볼 정도로 기력이 향상될 것이다. 다만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스북에 올린 한 학생의 글처럼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패배했지만, 인류는 여전히 위대하다.’ 인공지능 로봇은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빨리 뛸 수는 있어도 넘어진 옆 레인의 친구를 일으켜주려고 입력된 값을 포기하고 달리기를 멈추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세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에 대한 제어와 극복이다. 미국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안한 로봇공학의 3원칙은 1)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고 2)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며 3)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추가된 0번째 법칙은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인간을 이해하게 만드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제어와 극복은 기술적인 문제일 것이다. 인간이 삶에서 마지막으로 갖춰야 할 것은 끝없는 학습태도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그리고 딥러닝은 인공지능만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어 가르치고 이제는 오히려 거꾸로 배운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깨어 있게 하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일깨워주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게 나의 계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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