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의 스타일에 따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유치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 가입자 확보 전략부터 고액 가입자 위주 모집을 통해 내실을 꾀한다는 전략까지 각 은행이 처한 상황과 은행장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농협·하나은행 ‘공격 앞으로’=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의 ISA 출시 1주차 가입자 확보 규모는 농협, 하나, 신한, 국민, 우리은행 순이다. 가장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농협은행은 ISA 가입이 안 되는 지역 단위 농·축협 고객의 대부분을 흡수해 단연 선두로 올라섰다.
단위조합 농협이라는 지역 기관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지만, 올초 취임한 이경섭 은행장의 적극적인 유치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행장의 취임 후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행장의 공격적인 행보는 농협의 처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4분기 2000억원 이상 손실을 기록해 누적순이익이 전년보다 1.5% 증가하는데 그쳤다.
농협은행은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조선·해운산업의 대손충당금에 성장의 발목을 잡혔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1763억원(명칭사용료 부담전 4076억원)으로 전년대비 47.9% 감소했다. 그만큼 이 행장이 느끼는 실적 압박은 크다. 초반부터 고삐를 바짝죄겠다는 게 이 행장의 복안이다.
두 번째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KEB하나은행은 기업성향과 행장의 이력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함영주 행장은 영업통 출신으로 성과에 강한 애착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하나금유지주 특유의 확장지향 문화에 따라 가입 유치에 전사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신한 ‘중립’… 국민·우리는 ‘꼼꼼’ = 신한·국민·우리은행은 가입자 수가 근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신중하고 꼼꼼한 행장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회계사 출신의 윤종규 행장(지주회장 겸임)은 평소 꼼꼼하고 안정적인 경영스타일로 정평이 나있다. 삼일회계법인시절 동아건설 워크아웃 프로젝트 총괄책임자로 활약하며 재무관리 분야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2002년 국민은행에 합류해 재무기획본부·전략담당 부행장, 개인금융그룹 부행장을 엮임했고, KB금융지주 재무담당 최고책임자(CFO) 부사장으로 활약했다.
이번 ISA판매 전략에서도 외형 확장보다는 내실을 최대한 다진다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차분한 경영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ISA 판매 전략에서도 실익 없는 확장은 피하자는 원칙이다. 이광구 행장은 주요 은행 중 우리은행 가입자가 가장 적다는 소식을 알고 난 뒤에도 기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인사부장, 기획부장, 뉴욕지점장을 거쳤으며 글로벌 사업, 경영지원, 리테일 영업추진 등 다양한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특히 금융업에 대한 통찰력,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은 뛰어나다.
조 행장은 신한금융지주 특유의 실리추구 경영방식으로 가입자 유치와 내실의 균형감을 보여주고 있다.
◇농협 ‘깡통계좌’ 논란… 부메랑 될 수도 = 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은행과 내실 전략을 꾀하는 은행들의 전략이 갈리면서 향후 ISA 성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농협은행에 4대 시중은행을 제치고 압도적인 가입 건수를 기록했지만 계좌당 평균 금액은 4~5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지나친 가입자수 유치가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1만원 계좌 가입자들 대부분이 계좌 혜택을 꼼꼼히 따지기 보단 경품 획득을 노린 ‘묻지마’ 가입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불완전판매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 고객들이다.
불완전판매는 금융당국이 ISA와 관련해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금융회사의 판매 과정을 수시로 모니터링해 불완전판매를 적극 예방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금융감독원은 출시 초기인 만큼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ISA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권에서 5만원 이하의 소액 가입자가 많이 유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ISA제도가 안착했다고 판단하면 은행 검사를 통해 불완전판매를 엄격히 들여다 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