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유승민만 키워준 ‘팽 공작’

입력 2016-03-24 10:27 수정 2016-03-2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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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부국장 겸 산업2부장

기자들은 생태적으로 뇌가 비딱해서 누구를 당최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비리, 당파 싸움에 술자리 안주로 최적인 추문까지 그득해 색깔로 치면 검은색 아니면 회색밖에 떠오르지 않는 정치인은 더 그렇다. 그런데 필자 마음이 ‘조금’ 가는 정치인이 하나 있다. 바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다. 보수만 판치는 여당에서 유일하게 중도개혁의 목소리를 굳게 내온 인물이기 때문.

그런데 이 ‘조금’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 요즘 정치적 목숨줄이 확 끊길 위기를 맞았다. 새누리당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할 수 있는 시한인 23일까지 그의 공천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 심히 치졸한 방식으로 사실상 그를 공천 배제한 것. 유승민계라고 불리는 그의 측근 의원들도 공식적으로 공천에서 ‘아웃’시켰다.

새누리당이 그를 공천에서 찍어낸 명분은 그의 2015년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당헌에 어긋났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새누리당은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겠다.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며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오늘의 이 변화를 통해 내일의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방방 뜨며 비판하는 그의 발언은 새누리당 당헌 제2조와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 이념으로 인권과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발현되는 사회,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사회, 소외 계층의 생활 향상을 위해 자생적 복지정책을 추진해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는 사회를 추구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2013년 2월)도 유 의원의 발언과 크게 모순되지 않는다.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가겠다.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만 한다. 공정한 시장질서가 확립돼야만 모든 국민이 희망을 갖고 땀 흘려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 의원의 대표연설에서 또 하나 새누리당이 문제 삼는 부분은 바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내용이다. 유 의원이 박 대통령의 조세 관련 대선공약과 현재 새누리당 정강정책에 정면으로 부정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대표연설에서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 부족은 22.2조원이었다”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세금과 복지의 문제점을 털어놓고, 국민과 함께 우리가 모두 미래의 선택지를 찾아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그러면서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 그리고 소득과 자산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보편적인 원칙까지 같이 고려하면서 세금에 대한 합의에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경환 의원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의원들은 반성부터 하고 국민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라고 더 높은 수위의 공개 비판을 했다. 그런데 최 의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더니 유독 유 의원에게만 혹독한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유 의원과 유승민계를 도려낸 결과는 뻔하다. 바로 역효과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달 초부터 3주차까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유 의원은 전달보다 2.2%포인트 상승한 18.7%로 김무성 대표에 0.6%포인트 차이로 따라붙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김 대표와 유 의원은) 오차범위 내에서 박빙”이라며 “유 의원은 ‘공천학살’의 최대 피해자가 아니라 최대 수혜자가 됐다”고 분석했다.

유 의원의 팽 이슈가 집중적으로 불거진 3주차 새누리당의 지지율도 지난주 대비 2.6% 하락한 41.5%로 나타났다.

요즘 유권자들은 매우 영민하다. 언론을 총동원해 강력한 설득 작업을 해도 잘 안 넘어온다. 물론, 넘어올 때도 있지만, 그것은 정당성과 논리가 뒷받침돼 있을 때다.

여론이 이토록 안 좋으니 새누리당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론을 좇자니, 내가 지금까지 해놓은 짓이 걸림돌이고, 반대로 당의 기존 결정을 고수하자니 표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이들 중 일부라도 구제해 냉랭한 민심을 달래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일부 공천안’을 거부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지난한 설득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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