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경제 톡] 손님 불통에 주인은 울화통…‘노쇼’로 증발한 4조5000억원

입력 2016-03-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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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뿜')
(출처= 네이버 '뿜')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업주’란 제목으로 지난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예약부도(노쇼; No-Show)를 해 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손님에 대한 주인장의 원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명백한 업무방해”, “손님은 왕이란 인식부터 고쳐라” 등의 댓글 함께 이 게시물은 1000건이 넘는 ‘뿜(공감)’을 얻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로 인기를 모은 최현석 셰프도 지난해 한 프로그램에서 ‘노쇼’ 때문에 매월 2500만원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죠.

4,500,000,000,000원.
108,170명

노쇼 리스크,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소에서 5대 서비스 업종(음식점ㆍ병원ㆍ미용실ㆍ공연장ㆍ고속버스)의 예약부도에 따른 매출 손실을 따져봤는데요. 그 피해 규모가 4조5000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또 고용 손실도 10만8170명에 달한다 하네요.

“다른 손님 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서비스가 제공된 것도 아닌데 뭔 피해?”

혹시 이런 생각하셨나요? 그렇다면 이 사례를 ‘주인장’의 입장에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새초의 어느 날, ㅎ식당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40명이 식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는 예약 전화였죠. 이 손님은 3만원짜리 코스 요리도 미리 지정해놨습니다. 주인장은 아침부터 40인분에 맞춰 식재료를 준비하고, 아르바이트 2명도 추가로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손님은 예약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됐다”는 전화 한 통도 없었죠. 애프터 쇼(After show; 예약시간 후에 나타나는 손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주인장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끝내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주인장의 피해가 얼마나 될까요? 일단 눈에 보이는 것만 식재료 24만원+아르바이트 16만원(1인당 8만원)=40만원입니다. 돌려보낸 손님의 기회비용까지 합치면 120만원이 넘죠. 하지만 그 손님은 단 한 푼도 보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장사를 완전히 망쳤지만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없었죠.

▲공무원 합격을 위해 노량진 고시촌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는 '공수생(공문원 고시생)'들은 경쟁률만 높이는 '노쇼'들 때문에 분통이 터집니다.(뉴시스)
▲공무원 합격을 위해 노량진 고시촌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는 '공수생(공문원 고시생)'들은 경쟁률만 높이는 '노쇼'들 때문에 분통이 터집니다.(뉴시스)

‘노쇼’는 가끔 금전, 그 이상의 가치를 빼앗기도 합니다. 노량진 고시촌 가본 적 있으십니까?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곳이죠. 그들은 교실 앞자리에 앉기 위해 새벽 4시에 집을 나서고요. 의자 하나 없는 길거리에서 2500원짜리 컵밥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공무원 합격을 위한 외로운 싸움에 옷을 사고, 화장을 하는 건 사치에 불과합니다. 공시생들은 이 막막한 삶을 짧게는 1년, 길게는 3~5년간 합니다. 사실 기약이 없죠.

“공무원 시험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녜요. 똑같은 점수를 받아도 경쟁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죠. 경찰 시험의 경우 경쟁률이 낮은 지역으로 주소를 옮기는 수험생도 있어요.”

이같은 ‘공시생’들의 간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무원 시험에도 ‘노쇼’가 극성입니다. 지난해 730명을 뽑는 7급 공채에 5만9779명이 지원서를 접수했습니다. 경쟁률은 무려 81.9대 1. 하지만 시험장에 나타난 응시생은 3만3873명(응시율 57%) 뿐이었습니다. 9급 공채(응시율 74%)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죠.

“4월 1일부터 노쇼에 대해서는 ‘예약부도 수수료(No-Show Penalty)’ 10만원이 부과됩니다.”

‘손님은 왕’이란 시선 탓에 그동안 노쇼에게 당하기만(?) 하던 기업들이 반격에 나섰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이 다음달 1일부터 국제선 항공을 예약해 놓고 나타나지 않는 손님에게는 10만원의 예약부도 수수료를 물기로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예약부도를 내도 탑승날짜만 변경하면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됐지만, 앞으로는 노매너에 대한 대가를 별도로 치러야 합니다.

6월 영업을 준비 중인 카카오헤어 역시 선결제 시스템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노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중소 헤어샵을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죠.

손님은 왕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일 뿐이죠. 대우을 받으려면 그에 걸맞는 예의를 갖춰야하겠죠. “새끼손가락 고리 걸어서 꼭꼭 약속해”는 어린이뿐 아니라 철없는 어른에게도 필요한 동요인 것 같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이 다음달 1일부터 '노쇼' 고객에 대해 10만원의 예약부도 수수료를 물기로 했습니다.(연합뉴스)
▲아시아나 항공이 다음달 1일부터 '노쇼' 고객에 대해 10만원의 예약부도 수수료를 물기로 했습니다.(연합뉴스)

*잠깐! 노쇼가 뭔가요?
예약을 했지만, 취소 연락 없이 예약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손님을 말합니다. '예약부도(豫約不渡)'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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