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전근대적 ‘인격’이 낳은 ‘품격’없는 사회

입력 2016-03-31 10:30 수정 2016-03-3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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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사회경제부장

우리나라는 조선 500년을 거치면서 ‘공자(孔子)의 나라’로 살았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표현은 상징적이다.

어떻든 예의가 바르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예의가 수직적, 일방적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조선은 양반과 상놈으로 신분이 구분된 나라였고,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으로 구분된 나라이기도 하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말하는 예의는 일방적인 예의였다. 신하는 임금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예의를 다해야 하는 관계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방적이라는 게 문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근대성(前近代性)’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전근대성에 비견되는 ‘근대성’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본질로 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수직이 아닌 수평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 근대화다.

그러나 공자가 지배한 조선 500년은 한국의 근대화를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 일제시대를 거치며 유입된 폭력적 군사문화는 25년 가까운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며 우리의 내면을 장악하고 있다. 도처에 넘쳐나고 있는 대학교 선배들의 후배들을 향한 못된 짓이 대표적이다.

동방예의지국이 수평적 인간관계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 논란의 뿌리다.

경기도 성남의 한 음식점 사장님이 배달원에게 밀린 임금을 주면서 10원짜리 동전으로 17만원을 줬다고 한다. 이런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백미러는 물론이고 사이드미러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그리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던 대림그룹 이해욱 부회장의 갑질은 지금까지 나왔던 갑질 중에서도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모트롤의 갑질도 그렇다. 명예퇴직을 거부하는 직원을 책상 하나 덜렁 갖다놓고 벽을 바라보게 하는 발상은 어떤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 존중’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갑질은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공자의 예의문화와 상명하복의 군사문화가 결합된, 이른바 권위주의 문화는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당이나 주점 보조원들에게 아무렇게나 반말을 내뱉는 행위는 또 어떤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노인들의 행태는 어떤가?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고 판단되면 아무렇지 않게 반말부터 내뱉는 행위에서 우리 각자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손님은 왕’이라는 허위의식에 나온 온갖 갑질에 시달리는 감정노동자의 삶은 누가 만든 것인가?

새누리당에서는 ‘존영(尊影)’이 논란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친박연대’라는 이상한 이름의 정당으로 당선된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유승민 의원 등 탈당한 의원들의 사무실에 걸린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반납하라는 소동 그 자체도 우스꽝스럽지만, 존영이라는 표현은 아연이 실색하다.

지난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북한 응원단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남북 정상회담 장면 현수막이 비를 맞고 있다며 강력히 항의했던 당시 상황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한 사회의 품격은 그 구성원 개개인의 인격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대기업 총수의 자제들이 보여주고 있는 슈퍼갑질은 물론이고, 그런 갑질을 당하는 을과 을 간에서 벌어지는 갑질의 뿌리는 하나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수평적 인간관계로 상징되는 근대화가 아직 저 멀리 있기 때문이다.

제도와 시스템을 활용하여 갑질을 최대한 응징하자. 동시에 우리 각자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돌아보자.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수평적인 파트너로 인식하는가? 상하관계의 부하로 인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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