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꽃놀이 꼴불견

입력 2016-04-0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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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차를 머그컵 가득 담아 집 베란다 벤치에 앉았다. 늦은 오후의 햇살에 목련이 하얀 웃음을 짓는다. 제해만 시인이 읊은 대로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입 가득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 같다. 순간 머릿속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ㆍ현재를 즐기라)!”이 떠올랐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벚꽃이 지기 전 저 찬란한 봄을 즐기리라. 디지털카메라를 챙겨 집 근처 중랑천으로 나섰다.

데이트하는 연인과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꽃길을 따라 떠다녔다. 연분홍 벚꽃 세상으로 들어서니 봄의 한복판이다. 벚꽃이 아름다운 건 짧은 시간 피고 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둠이 내리고 곳곳에 설치된 조명이 켜지면서 환상적인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그런데 황홀한 기분이 한순간에 깨졌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술을 마시며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어휴, 볼썽사나워!”라고 한마디 던지고 지나쳤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모습이 보기에 역겨울 때 볼썽사납다, 볼쌍사납다, 볼성사납다, 볼상사납다 중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볼썽사납다’이다. 볼썽은 남에게 보이는 체면이나 태도이다. 동사 ‘보다’의 활용형 ‘볼-’에 한자 ‘상(相)’이 합쳐진 ‘볼상’이 어원이다. 때문에 ‘볼상사납다’를 바른말로 아는 이들이 많은데, 언중이 ‘볼상사납다’보다 ‘볼썽사납다’를 더 많이 쓴다는 이유로 볼썽사납다만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랐다.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표준어규정 제17항에 따른 것이다. 아궁이/아궁지(ⅹ), 어중간/어지중간(ⅹ), 딸꾹질/딸국질(ⅹ), 천장/천정(ⅹ) 등이 이 규정에 해당한다. 볼썽사납다는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볼썽없다’는 보기에 역겹고 보잘것없다는 뜻의 형용사이다. “집 나간 아이가 며칠 만에 볼썽없는 거지꼴로 돌아왔다”처럼 활용할 수 있다. 겉모습이 초라할 때는 ‘볼품없다’란 말이 어울린다. 보통 ‘있다’와 ‘없다’는 형용사로, 앞말과 띄어 써야 하지만, 볼썽없다, 볼품없다는 하나의 단어이므로 붙여 쓴다.

하는 짓이나 겉모습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우습고 거슬릴 때에도 ‘꼴불견’과 ‘꼴볼견’을 두고 고민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단어의 형태를 생각하면 명쾌해진다. 순 우리말 ‘꼴’에 한자어 ‘불견(不見)’이 결합된 말로 꼴불견이 맞다.

시도 때도 없이 스킨십을 해대는 ‘애정표현족’, 함부로 꽃을 꺾고 심지어 꺾은 꽃가지를 들고 기념 촬영까지 하는 ‘터치족’,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일삼는 ‘소리족’, 쓰레기족 등 ‘벚꽃놀이 꼴불견’이 네티즌 사이에 화제다. 아름다운 봄날, 꽃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사람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사람에게 시달려 꽃이 더 빨리 질까, 그래서 봄날이 더 급하게 갈까 걱정이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이 청복(淸福)을 더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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