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에 바란다] 한국 정치의 새판을 짜야 할 4·13총선

입력 2016-04-1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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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4·13총선은 2017년 12월 20일의 19대 대선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공천 싸움을 비롯한 모든 선거행위의 배경에 다음 대선이 어른거린다. 박근혜 정부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확보함으로써 그 이후의 대선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측과, 박근혜 정부의 불통 정치를 억지함으로써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려는 세력의 쟁패가 큰 구도를 이루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선거의 여왕’이라고 한다. 곁이 없는 외골수 정치를 하면서도 박 대통령은 콘크리트와 같은 지지층을 결집시켜 선거 때마다 힘을 발휘해왔다. 이번 총선도 ‘여왕의 선거’가 될 것인가.

4·13총선은 종전의 총선 대선과 판이하다. 우선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계속돼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결이 많이 희석됐다. ‘깜깜이 선거’, 성격이 애매한 선거라는 말도 하지만 다원화사회로 본격 이행하는 선거라고 볼 수 있다. 유권자는 2030세대가 34.1%인 데 비해 50대 이상이 43.2%다.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면 나이 든 세대는 거의 절대적으로 보수적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종전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것 같다. 여론조사 결과나 현장 보도가 맞다면 ‘여왕의 선거’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든 야든 부동층(不動層)이 부동층(浮動層)으로 바뀌고, 연령에 따른 투표성향의 차이도 묽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대혼전이다.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박빙지역이 전체의 절반에 이르고, 각 당의 전통적 우세지역도 백중의 각축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표심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을 사려고 무릎 꿇어 사죄하고 큰절을 올려 애걸해도 국민들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정치에 대한 혐오와 염증은 투표 무용론, 선거 거부론을 넘어 ‘지지후보 없음’ 기표란을 신설하라는 요구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실망의 누적이며 분노의 표출이다. 정치란 가까운 자가 기뻐하고 먼 데 있는 자가 찾아오게 하는 것(논어)이라는데, 우리 정치는 가까운 자가 분노하고 먼 데 있는 자가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3당체제의 정립(鼎立)이 예상되는 이번 총선의 핵심 단어는 정체성이다. 각 당은 정체성을 확립한다며 정체를 바꾸었고, 정체성이라는 정체불명의 잣대로 특정인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파랗던 여당은 빨갛게, 빨갛던 야당은 파랗게 일변했다. 여당의 핵심인사가 야당을 이끌고, 야당의 정책수뇌가 여당의 선거를 지휘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이 코끼리 대신 민주당의 당나귀에 올라탄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런 변색(變色)과 각색(脚色)의 정치를 어떤 이들은 ‘정치스와핑’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스와핑은 ‘부부 교환’이라는 속어로 쓰이지만, 경제용어로는 주식이나 지분을 서로 주고받거나 맞바꾸는 일이며 서로 다른 금리 또는 통화로 표시된 부채를 상호 교환하는 거래를 말한다. 주고받고 오고가는 거래와 왕래는 원래 쌍방의 합의와 요구 충족을 전제로 한다.

정당과 정치인이 불건전하고 부정직하게 변하면 유권자는 건전하고 정직하게 바뀌어야 한다. 스와핑의 긍정적 순기능을 살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 패권주의가 불식되게 해야 한다. 영남에서 호남 출신이 당선되고 호남에서 영남 출신이 당선되게 뒤섞어 주는 게 ‘스와핑 투표’다.

또 당보다는 후보들의 됨됨이를 면밀히 살펴 새롭고 참된 인물이 많이 국회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19대 국회와 같은 구제불능 정치를 지양하고, 정치판을 새로 짜도록 유도하고 명령하는 게 유권자들의 몫이다. 선거는 다 그렇지만, 4·13총선은 더 심각하고 절박하게 유권자들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한국 정치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망설임과 거부감을 딛고 끝내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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