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먼저다] 2만달러 주춧돌 놓은 반도체, 전후방산업 이끈 車… 다음은?

입력 2016-04-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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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가발 수출 국민들 기근 탈출·자동차 생산 5위… 2011년 무역 1조달러 이후 정체상태… ‘미래 먹거리’ 新기술·新상품 만들 때

우리나라 경제는 1960년대부터 무역이 발전하며 급속도로 성장해왔다. 2011년 12월 5일에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하는 성과를 이뤘다. 정부는 이를 기념하고자 매년 12월 5일을 ‘무역의 날’로 제정하기도 했다. ‘무역의 날’ 이전에 제정됐던 ‘수출의 날’이 1964년 11월 30일 수출 1억 달러 돌파를 기념해 만들어졌음을 고려하면 불과 50년도 되지 않아 수출액이 1만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가발은 우리나라 수출 신화의 포문을 열었으며 라디오는 전자제품 수출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또 과거 브라운관 TV를 넘어 현재의 LCD·아몰레드 등 디스플레이 산업은 수출 효자상품의 대명사가 됐고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첨단기술 기반 산업을 세상에 전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려면 과거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제품과 기술들처럼 향후 먹거리를 책임질 기술·제품 마련이 시급하다.

◇가발, 수출신화 만들다 = 한국전쟁 직후 1950년대에는 광물과 수산물 등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원 위주의 수출이 이뤄졌다. 그러다 1965년 수출장려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섬유와 가발 같은 공산품이 광물과 수산물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특히 가발산업은 지속해서 성장하며 1966년에 1062만 달러의 수출 기록을 세웠고 1970년대에는 수출 1억 달러의 신화를 만들어내며 전쟁 직후 피폐한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 가발은 우리나라 총 수출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대표적인 수출품이었다.

하지만 수출의 견인차였던 가발산업은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10대 수출상품 목록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겪는다. 고임금화와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기술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인 가전제품에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게다가 가발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 시장의 수요가 줄어들고, 후발주자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이 값싼 노동력으로 저가 공세를 시작하며 가발산업은 본격적인 사양길로 접어든다.

대한민국 수출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던 가발산업은 2000년대 들어 ‘고부가가치 패션 산업’으로 재탄생한다. 공장을 해외로 돌려 인건비를 낮추고 트렌드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하는 한편, 가발용 합성원사와 부자재의 품질까지 향상시키며 체질 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발산업은 2005년 2536만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하고, 이후로도 매년 10% 이상 성장하며 ‘수출효자 상품’의 위상을 되찾아 전쟁으로 인한 기근에서 국민들을 벗어나게 하는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라디오, 전자제품 수출국 시대 열다 = 우리나라가 국산 라디오를 처음 생산한 때는 1959년 11월 15일이었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개발한 ‘A-501’이 첫 제품으로 ‘전기용 5구 라디오 제1호’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금성사는 1958년 10월 우리나라 첫 번째 전자공업 회사로 설립돼 최초의 국산 라디오와 흑백 TV 등을 잇달아 출시하며 국내 전자산업의 서막을 열었다.

1962년 국가에서 추진한 ‘농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이 시작되면서 침체하던 국산 라디오 생산은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 ‘1가정 1라디오’란 목표 아래 라디오 생산량이 많이 늘어났고, 농어촌에 국산 라디오가 보급되며 비로소 ‘라디오 시대’가 열렸다.

품질을 끌어올린 국산 전자제품은 1960년대부터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1962년 미국 아이젠버그 사에 라디오 62대를 처음으로 수출하는 성과를 올린 데 이어, 홍콩으로의 수출도 이뤄졌다.

알음알음 진행되던 전자제품 수출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규모가 확 커졌다. 한국의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돌파했던 1977년, 전자제품의 수출 비중은 11%에 달할 정도였다. 금성사는 1978년 수출 1억 달러를 기록했고, 1969년부터 전자산업을 시작한 삼성전자도 1979년 수출액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전자제품의 ‘불모지’이자 ‘수입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수출국’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것도 이 시기다.

◇TV, 수출 효자상품이 대명사 =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주로 의류나 신발 등 경공업 제품들을 수출했다.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부터다. 정부의 전자공단 설립 등 집중적인 지원책에 힘입어 전자산업이 고속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전자기술 집약의 상징이었던 컬러TV 수출이란 결실로 나타났다.

컬러 TV로 대표되는 한국 전자제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튼튼한 내구성,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인정받으며 1988년 163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 경공업 분야를 제치고 수출 선두로 도약했다. 라디오나 TV 등 백색가전의 성장으로 1962년 104위에 불과하던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는 2012년 7위까지 올라서게 된다.

이러한 TV 산업에서 우리나라는 현재 스마트TV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가전 전시회에서 TV의 스마트화가 주목받으며, 트렌드를 주도하는 국내 업체들의 제품도 큰 관심을 받았다. 타국의 물량 공세 및 첨단 기술 홍보가 범람하는 가운데에서도 삼성과 LG는 자사의 올레드 TV 등으로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세계 가전제품 시장을 나누는 양대 산맥의 면모를 드러냈다.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TV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33.6%를 기록해 부동의 1위를 지켰다. 다만 중국이 27.5%로 무섭게 추격하면서 양국 업체의 점유율 격차가 역대 처음으로 10%포인트 이내로 좁혀졌다.

◇자동차, 국산 자가용 시대 넘어 수출 강국 = 1945년 해방과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기술은 물론 수출할 만한 품목 또한 마땅치 않았다. 자동차 산업이란 여러 재료로 각기 다른 생산 공정을 거쳐 만들어낸 수많은 부품을 조립해서 완성하는 복잡한 조립 산업이었기에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자동차 산업 기반을 정립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55년 최초의 국산 자동차 ‘시발‘이 개발되면서부터다. 이듬해에는 자동차공업 5개년 계획이 추진되고 자동차공업보호법과 시행령이 발표되면서 점차 산업의 기틀이 잡혔다.

자동차산업은 1975년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개발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포니는 모든 부품이 국산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초기 국산화율이 85%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초 고유 모델이었다. 포니는 시판 첫해인 1976년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의 절반에 가까운 43.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고, 같은 해 7월 남미 에콰도르에 다섯 대의 수출을 시작으로 점차 수출국이 늘어나 1978년에는 1만2195대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는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존 모델을 변형해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고 활발하게 기술을 도입했다. 이렇게 키워낸 역량을 통해 수출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0년대 들어 대중화된 자동차시장은 1990년대 중반 자동차와 승용차 부문 200만대 생산체제가 구축됐고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에 진입했다. 또 자동차산업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인원은 2001년 147만명에서 2010년 175만명으로 느는 등 총 고용인원의 7%를 웃돌며 국가 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업이 됐다.

◇반도체, 첨단기술로 시장 선도 =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1965년부터 시작됐다. 1970년 금성사와 아남산업이 최초의 반도체 조립을 시작했고, 1974년 10월에는 삼성반도체통신주식회사의 전신인 한국반도체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이후 한국반도체주식회사는 단순 조립을 넘어 웨이퍼를 가공하는 데 도전했지만, 생산 경험이 없었던 데다 재무 상황이 악화해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침체한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려고 1981년 9월 반도체 육성 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 고무받아 반도체 산업에 과감히 뛰어든 기업이 바로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전자공업이다.

1983년 연구개발에 착수한 삼성전자공업은 6개월 만에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RAM 개발에 성공한다. 1984년 삼성전자공업은 사명을 삼성전자로 바꾸고 나서 1992년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어 산·학·연 협동 국가공동연구개발사업으로 독자적 기술을 확보해 4M, 16M, 64M, 256M D램을 연이어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이때 개발한 독자적 기술에 힘입어 1993년 메모리 부문 세계 1위로 당당히 올라섰고 2002년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부문에서도 세계 1위에 올랐다. 게다가 2006년에는 세계 최초로 50나노급 1Gb D램과 2007년 30나노 낸드 등을 출시하며 메모리 부문 점유율 30%를 넘어섰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반도체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연 주춧돌 역할을 한 데 이어, 지난해엔 우리나라 GDP의 4.4%가량인 629억16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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